1사 주자 3루에서 투수가 타자를 삼진 아웃으로 돌려세웠습니다. 그러자 포수는 이닝이 끝났다는 듯 마운드 쪽으로 공을 굴렸습니다. 수비수들도 전부 더그아웃을 향해 걸어 들어왔고요. 3루 주자는 어리둥절했지만 수비 팀이 너무 태연하게 행동하니 어쩔 수 없이 더그아웃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주자 곁을 지나던 1루수가 공을 주워 주자 몸에 태그했습니다. 그때서야 진짜 이닝이 끝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야구 경기에서 실제로 나온 장면입니다. 수비 팀의 플레이는 스포츠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비신사적 행위일까요? 아니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돋보인 행위일까요?
일단 창의적이라는 것에 대한 견해가 저마다 다를 겁니다. 그래서 새뮤얼 미클러스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OM·Odyssey of the Mind) 설립자(전 미국 로언대 교수) 말을 인용하려 합니다. 미클러스 교수는 전 세계 학생들을 ‘창의력 교육’에 시달리도록(?) 한 장본인으로 통합니다. 교육부 취재 기자 시절 OM 현장에서 만난 그는 “창의력은 도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기태 KIA 감독이 8일 목동 경기 9회말 1사 3루에서 넥센 박병호(29)와 김민성(27)에게 연속으로 고의사구 사인을 낸 것은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김 감독은 두 타자 연속 고의사구라는 ‘도전적인’ 선택을 내렸고, KIA는 결국 2012∼2014년 공격 팀이 평균 1.803점을 올린 1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끝내기 실점 위기라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실 2012∼2014년 프로야구 경기를 분석해 보면 볼넷은 득점가치(Run Value)가 0.232점이지만 고의사구는 ―0.190점으로 오히려 공격 팀 득점을 줄이는 선택입니다.
그러면 ‘빈 글러브 태그’로 비판받고 있는 SK 김광현(27)은 어떨까요? 김광현은 9일 대구 경기에서 2회말 2사 2루 때 홈으로 파고들던 삼성 최형우(32)를 태그해 아웃 판정을 이끌어 냈습니다(사진). 실제로는 글러브 안에 공이 없었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주자와 심판을 속인 겁니다.
저는 이 역시 김광현이 ‘도전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NCAA 사례도 마찬가지고요. 스포츠 선수는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그런데 야구 규칙 어디에도 빈 글러브로 태그하는 것처럼 상대를 속이거나 이닝이 끝난 것처럼 연기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두 사례 모두 상대 팀들에도 ‘속지 않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NCAA 사례는 그저 3루 주자가 베이스를 계속 밟고 있었으면 그만이고, 김광현 사례도 상대 팀 삼성에서 심판 합의판정을 신청했으면 1점을 얻은 채 계속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 김광현 사례에서는 심판이 올바른 판정만 내렸다면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는 ‘해프닝’으로 끝났을 겁니다.
그래도 김광현이 먼저 자백했어야 했다고요? 그러면 1루수는 자기가 느끼기에 세이프인 주자를 심판이 아웃 판정을 내릴 때마다 ‘아니다’라고 항의하는 게 옳은 것일까요? 어쩌면 야구 자체가 이렇게 ‘비신사적 창의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스포츠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는 볼인 공을 스트라이크인 것처럼 구심을 속이는 ‘미트질’을 잘하는 포수일수록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종목이니 말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