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경기 팀OPS 0.960 공포타선 kt 다양한 로케이션에 속수무책 헛스윙 유희관 “맞혀 잡으려 스피드 줄였다”
메이저리그 305승 투수인 톰 글래빈은 ‘느리게, 더 느리게, 그러나 더 정확하게’를 실천한 투수였다. 682경기에서 305승과 방어율 3.54를 기록한 위대한 투수 글래빈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한 공이 꼭 강속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스테로이드로 괴물 같은 힘을 얻은 타자들 앞에서 증명하며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투수는 공을 빠르게 던지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잡기 위해 오른다”는 NC 손민한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도 글래빈에게는 시속 135∼141km의 공이 있었다. 15일 잠실구장에선 글래빈과 같은 왼손투수지만, 훨씬 통통한 몸매에 공도 훨씬 느린 투수 유희관(29)이 두산 선발로 등판했다. 그가 상대한 kt 타선은 7월 9경기에서 0.960의 무시무시한 팀 OPS(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하고 있었다. 팀 타율도 0.350으로 1위이고, 팀 홈런(11개)은 3위, 팀 득점(67개)은 2위였다. 좌완투수에게 매우 강한 댄블랙이 가벼운 손목 부상으로 출장하지 않은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평소 시속 130km대 중반의 ‘빠른 공’을 던지던 유희관은 이날은 좀처럼 125km 이상을 찍지 못했다. 6회초 2사 만루 위기를 맞았을 때 박경수를 상대로 던진 129km(TV 스피드건 기준)의 직구가 그 때까지 가장 빠른 공이었다. 7회초 던진 130km가 이날 기록한 가장 빠른 공(두산 스카우트팀 측정은 131km)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7이닝 5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이었다. 경기 초반 kt 타선은 평소보다 더 느린, 그러나 더 정확한 유희관의 공에 좀처럼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날아오는 돌덩어리보다 하늘하늘 다가오는 비눗방울을 맞히기가 더 어려운 것처럼 kt 타자들의 배트는 연신 허공을 갈랐다. 6회 연속안타와 유격수 실책으로 2사 만루 위기를 한 차례 맞았을 뿐, 활활 타오르고 있던 kt 타선을 잠재운 완벽한 투구였다.
유희관이 호투하는 사이 두산은 타선 폭발로 11-0의 대승을 거뒀다. 유희관도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서 시즌 12승째(2패)를 따내며 삼성 알프레도 피가로(11승4패)를 따돌리고 다승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경기 후 유희관은 “지난해 12승을 했는데 올해 전반기에 12승을 해서 무척 기쁘고 야수들에게 굉장히 고맙다. 후반기에도 잘해서 꼭 팀이 4강에 가고 우승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일부러 직구 스피드를 살짝 줄이고 로케이션을 다양하게 해 맞혀 잡는 데 주력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