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경찰로 일하던 아버지는 40대 후반에 명예퇴직을 했다. 프로 골퍼의 길을 걷는 셋째 딸이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원하던 승리를 합작한 부녀는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최운정(25·볼빅)과 아버지 최지연 씨(56)였다.
20일 미국 오하이오 주 실베이니아의 하이랜드 메도우스 골프장(파71)에서 끝난 마라톤클래식. 최운정은 이날 5타를 줄여 최종 합계 14언더파 270타로 장하나(비씨카드)와 동타를 이룬 뒤 18번홀(파5)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파를 지키며 보기를 기록한 장하나를 제쳤다. 2009년 미국LPGA투어 데뷔 한 최운정이 157번째 도전 만에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출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전투경찰로 군복무를 마친 아버지 최 씨는 1989년부터 2008년까지 경찰관이었다. 최 씨는 “운정이가 12세 때 엄마 따라 연습장 갔다 골프와 인연을 맺었는데 중3 때 전국대회에서 덜컥 우승했다. 그 후 미국 유학 보내달라고 했던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딸을 위해 경찰복을 벗기로 결심한 최 씨는 6000만 원 가량의 명예퇴직금과 주택 담보 대출 등으로 2억 원을 모아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7년 최운정이 2부 투어에서 뛸 때부터 두 부녀는 선수와 캐디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아버지가 힘들까봐 20kg 넘게 나가는 캐디백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른 선수들보다 용품을 훨씬 적게 백에 넣고 다니는 최운정은 “아빠가 없었다면 이런 기쁨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톱10에 10번 들며 동료들이 뽑은 모범선수상까지 받았던 최운정은 무관의 시간이 길어지는데 따른 조바심으로 올 시즌 초반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우승에 목말라도 골프 선수로서 직업의식을 갖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게 우선”이라며 격려한 아버지와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최근 US여자오픈 때는 역대 9홀 최소타 기록인 29타를 기록했었다. 약점이던 퍼팅을 끌어올리려고 하루에 3시간 이상 연습한 최운정은 이날 퍼터를 26번 밖에 휘두르지 않았다.
아버지 최 씨는 “아빠가 캐디를 해 우승을 못하는 게 아닌 가 고민이 많았다. 현재 미국에서 뛰는 한국 선수 중 아빠 캐디는 나 밖에 없다. 지난해 잠시 캐디를 안했는데 운정이가 아빠가 없으니 불안하다고 해 다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핸디캡이 9인 최 씨는 “경찰 출신으로 꼼꼼한 성격이 캐디와 잘 맞는다. 딸과 약속한대로 우승했으니 캐디를 관둬야 할 것 같다. 일단 다음 2개 대회는 계속 할 생각”이라고 했다.
전담 캐디는 보통 우승 상금의 10%를 보너스로 받는다. 이번 대회에서 최운정은 22만5000 달러(약 2억5000만 원)를 받았다. 아버지 최 씨는 “나도 캐디다. 계약서도 쓰고 일한다”며 웃었다.
최운정의 우승으로 올 시즌 한국인 선수는 2006년과 2009년 세웠던 역대 한 시즌 최다승 기록과 타이인 11승을 합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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