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루라고 홈런 욕심 내지마. 이기는 팀은 어떻게 점수를 만들어내는지(manufacture) 아는 법이니까. 왜 희생플라이가 야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레이인 줄 알아?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니까?) 그리고 타율 계산에서도 빼주기 때문이지. 야구가 인생보다 나은 이유야. 공평하거든.” - 미국 영화 ‘더 팬(The Fan)’
야구 영화의 최고 명대사 중 하나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점수를 만들어내는 방식에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콩으로 만든 채식주의자용 고기를 앞에 두고 한우 1++등급보다 더 육질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느낌이랄까요. 희생플라이는 1점이지만 만루에서 홈런이 나오면 4점을 얻습니다.
2012~2014년 프로야구 득점 가치(Run Value)를 구해 보면 희생플라이는 -0.330점이 나옵니다(표 참조). 득점 가치는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플레이가 나왔을 때와 비교해 그 플레이가 몇 점을 더 뽑아냈거나 덜 얻어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희생플라이는 당장 1점은 만들어내지만 그 뒤로 이닝이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있는 예상 득점을 줄인 겁니다. 희생번트도 0.132점을 ‘줄입니다’.
희생번트에 ‘희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이해가 갑니다. 희생번트는 분명히 타자가 ‘나는 아웃 당하겠다’고 선택한 플레이입니다. 삼진(-0.405점)은 물론 뜬공(-0.375점)이나 땅볼(-0.379점) 아웃과 비교해도 예상 점수는 3분의 1 정도밖에 줄지 않습니다. 병살타(-0.980점)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반면 희생플라이는 타격 기회를 희생한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뜬공 아웃과 득점 가치에서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1사 3루 때 땅볼로 주자를 불러들이면 타율이 깎이지만 뜬공은 타율과 상관없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유독 뜬공으로 주자를 불러드리는 것만 ‘야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레이’라고 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는 겁니다. ‘이기는 팀’ 논리도 마찬가지. LG는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희생플라이 143개로 가장 많은 팀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같은 기간 LG가 최고로 많이 이긴 팀은 아니었습니다.
야구 통계를 다루는 이들도 이미 비슷한 의문을 품고 1986년부터 출루율 계산 때 희생플라이를 분모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희생플라이가 늘어나면 타율은 그대로지만 출루율은 떨어지게 된 겁니다. ‘더 팬’이 처음 상영된 1996년과 비교하면 출루율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으니 야구가 인생보다 공평한 이유도 그만큼 퇴색했는지 모릅니다. 아니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희생플라이보다 당연히 적시타가 낫습니다.
그렇다고 희생플라이라는 규정을 없애거나 ‘희생’이라는 표현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프로야구 타자라면 누구나 외야로 뜬공을 보내는 법은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어떻게든 삼진을 잡아내려는 투수를 상대로, 주자가 여유 있게 걸어 들어올 만큼 충분히 멀리 공을 날리는 건 분명 ‘나는 아웃 당해도 좋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불가능한 요소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도 희생플라이가 좀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도 있었겠지만 당장 이 모습도 무엇인가를 희생해 얻어냈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기회 말입니다. 때로는 이미 뽑은 10점보다 3루에 있는 주자 한 명이 더 간절하고 절실한 상황이 분명 존재하게 마련이니까요.
::득점가치::
2012~2014 프로야구에서는 무사 3루 때 평균 1.679점이 났다. 만약 희생플라이 하나로 1점만 얻은 채 이닝이 끝났다면 이때는 평균보다 0.679점을 적게 올린 셈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각 플레이가 나올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해당 타격 결과 이후 이닝이 끝날 때까지 올린 득점과 평균 득점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계산한 값이 ‘득점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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