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투수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많지 않다. 최근 들어 홀드가 승리와 세이브만큼 각광받고 있지만, 때를 가리지 않고 등판하는 불펜투수들을 홀드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투수들을 평가하는 전통적 지표인 방어율이 있지만, 불펜투수의 가치를 온전히 반영할 순 없다.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데 안타를 맞으면, 이 점수는 앞선 투수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기출루자 득점허용률(IRS)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기록이다.
물론 IRS도 주자가 1루에 있든, 3루에 있든 같은 가치로 평가한다는 단점은 안고 있다. 그래도 주자의 득점을 막는 불펜투수의 능력은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타자 유형에 따라 불펜을 운용하다 보니, 상대의 힘 있는 좌타자를 상대로 등판하는 좌투수들의 기출루자가 많았다. 전반기 가장 많은 49명의 기출루자를 기록한 SK 정우람, 한화 김기현, LG 윤지웅 모두 왼손투수다. 정우람은 49명의 기출루자 중 단 5명의 득점만 허용해 IRS 0.102를 기록했다. 전반기 기출루자가 20명 이상이었던 37명의 투수 중 1위다. 10명 중 한 명 꼴의 득점만을 허용하며 철옹성을 구축했다. 2위는 0.122(49명 중 6명 득점 허용)를 기록한 김기현이었다. 정우람이 7승2패10홀드7세이브로 기록상 두각을 드러낸 것과 달리, 김기현은 1승2홀드만을 거뒀다. 아무래도 경기 초반 위기 상황에 등판하는 경우가 많아 구원승이나 홀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출루자 20명 이상을 기록한 주요 불펜투수 37명 중 꼴찌는 LG 이동현이었다. 23명의 기출루자 중 무려 14명의 득점을 허용해 IRS 0.609를 기록했다. 이동현 앞에 등판했던 정찬헌이 음주사고로 이탈하면서 그에게 과부하가 걸린 측면이 컸다. 정찬헌은 징계 전까지 기출루자 20명 중 3명의 득점만을 허용해 4위(0.150)에 올랐다.
한화 좌완 권혁은 기출루자 27명 중 4명의 득점을 허용해 IRS 0.148로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권혁의 방어율은 4.01에 이른다. 팀 동료 김기현(3.94)과 마찬가지로 위기 상황은 잘 막았으나, 정작 다음 이닝에 실점했다. 불펜투수를 타이트하게 기용하고 소화이닝도 많은 팀의 특성상 IRS는 낮은데 방어율은 높은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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