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추신수냐 감독이냐… 추는 어디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4일 03시 00분


텍사스 1억3000만달러 거물-신임 사령탑…
6월 갈등 이후 냉랭한 관계 아직 풀리지 않아
추신수 성적 따라 출장 조절하는 분위기지만
팀의 승리만이 두 사람 모두 사는 길인데…

감독이 9명의 타자를 고르고 나서 1∼9번까지 순서대로 배치하는 경우의 수는 무려 36만2880가지다. 감독은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해서 그중 하나를 택한다. 그에 따라 승부의 절반이 결정된다. 십수 년 경력의 감독조차 “누가 좀 대신해 줬으면 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렵다.

근래 메이저리그 텍사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은 36만 가지보다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움직였다. 최소 두 배 이상이다. 추신수 때문이다. 추신수를 가급적 배제하는 쪽으로 라인업을 짜느라 대체 선수 결정 등 고려 사항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일차적 원인은 추신수의 부진에 있다. 그런데 배니스터 감독의 라인업을 본 전문가들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복수 코드’가 읽힌다는 것이다.

배니스터 감독과 추신수는 지난달 한바탕했다. 배니스터 감독이 베테랑 추신수의 수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자 추신수가 “그럼 직접 해보라”며 반발했다. 물론 프로답게(?) 곧바로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앙금은 그렇게 쉽게 가시지 않았던 것 같다.

후반기 개막과 함께 배니스터 감독은 왼손 투수가 나오면 추신수를 빼는 쪽으로 라인업을 짰다. 추신수의 좌투수 상대 타율이 낮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또 추신수가 대타를 준비하고 있는 걸 뻔히 보고는 다른 선수를 내세웠다. 추신수가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또 경기 후반에 수비수로 투입하고는 그 이닝에 바로 교체했다. 배니스터 감독은 수비 전문가였으니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추신수에게 단단히 모욕을 준 것이었다. NC 김경문 감독이 “배니스터 감독이 추신수를 기용하는 걸 보면 의아할 때가 많다”고 밝힌 게 이런 뜻이다.

텍사스 존 대니얼스 단장으로서는 자신이 1억3000만 달러에 영입한 추신수가 실패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의 배니스터 감독을 올해 텍사스 사령탑으로 데려온 사람 역시 대니얼스 단장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갈등을 방치하면 누군가는 떠나야 한다.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는 시애틀 시절이던 2005년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에게 맞섰다.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였다. 이치로는 일본 언론을 통해 감독의 리더십을 맹비난했다. 감독은 구단에 이치로의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이치로는 윗선(시애틀 구단을 소유한 일본 게임 기업 닌텐도)에 감독 경질을 요청했다. 하그로브 감독은 결국 2년 뒤 팀을 스스로 떠났다.

지난해까지 류현진과 한솥밥을 먹었던 핸리 라미레스도 마찬가지. 2009년 플로리다 시절 설렁설렁 수비를 하다 감독에게 찍혔다. 당시 무명이었던 사령탑 프레디 곤살레스 감독이 공개적으로 게으른 플레이를 지적하자 슈퍼스타 라미레스는 발끈했다. 구단은 라미레스의 편을 들었다. 곤살레스 감독은 시즌 막판 해임됐다.

추신수는 팀 내 유일한 스타도 아니고 닌텐도 같은 후광도 없다. 그래도 1억3000만 달러짜리 고액 연봉 선수다. 혹시나 추신수가 이기면 팀은 망가질 것이다. 반대로 배니스터 감독이 이기면 추신수에게는 평생 ‘먹튀’ 낙인이 찍힌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구단은 타격을 입는다.

최근 들어 추신수의 성적에 따라 배니스터 감독이 수위 조절을 하는 모양새다. 갈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야구계에서 검증된 정답은 딱 하나다. 추신수도 배니스터 감독도 아닌 ‘텍사스’가 이기는 것이다. 그게 두 사람이 텍사스에 온 이유이고 두 사람 모두 사는 길이다. 아마 두 사람 모두 아는 사실일 것이다.

윤승옥 기자 touch @donga.com
#텍사스#제프 배니스터#추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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