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종가(宗家) 영국에는 축구협회가 4개 있다. 설립 순서대로 잉글랜드(1863년), 스코틀랜드(1873), 웨일스(1876년), 북아일랜드(1880년).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달리 국가단위가 아닌 축구협회를 회원으로 받는다. 그래서 이들 4개 협회는 월드컵을 포함한 FIFA 주관 대회에 각자 대표팀을 출전시킨다. 같은 영국 연방이라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횟수가 다 다른 이유다.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가 굴러가는 잉글랜드는 14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나갔다. 스코틀랜드는 8번 진출했다. 북아일랜드는 3회에 그쳤다.
웨일스는 몇 번이나 나갔을까. 1958년 스웨덴 대회 때 딱 한 번 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했다. 대표팀 선수층이 얇아 국제대회에서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4시즌을 뛰며 13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한 웨일스 출신의 라이언 긱스(42·은퇴)도 월드컵 본선에 네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런 웨일스에 기회가 왔다.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이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26일 발표된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조 편성에서 웨일스는 전체 9개 조 가운데 D조 톱시드를 받았다. 같은 조에 속한 오스트리아(15위), 세르비아(43위), 아일랜드(52위), 몰도바(124위), 그루지야(153위)가 모두 FIFA 랭킹에서 아래 팀이다. 2012년 82위였던 웨일스는 랭킹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으며 잉글랜드(9위) 바로 밑인 10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려 톱시드를 받았다. 예선 각 조 1위는 본선에 직행한다. 2위 중 성적이 좋은 순으로 8개 팀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네 팀이 본선에 간다.
예선 조 편성이 나오자 웨일스 팬들은 만세를 불렀다. 60년 만의 본선 진출로 개러스 베일(26·레알 마드리드)이 월드컵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기대 때문. 베일은 에런 램지(25·아스널)와 함께 3년 만에 웨일스의 랭킹을 70계단 넘게 끌어올린 웨일스 황금세대의 대표 주자다. 베일은 토트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팀을 옮기던 2013년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약 1500억 원)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웨일스가 탈락해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베일과 달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4·파리 생제르맹)는 러시아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이 가시밭이 됐다. 그의 나라 스웨덴(33위)이 강팀 네덜란드(5위·톱시드), 프랑스(22위)와 같은 A조에 속했기 때문이다. 2001년 국가대표에 뽑힌 뒤로 유벤투스, 인터 밀란, FC 바르셀로나 등의 명문 클럽을 거친 이브라히모비치이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본선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3년 11월 브라질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플레이오프 최종 2차전에서는 혼자 2골을 넣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0·레알 마드리드)가 3골을 몰아친 포르투갈에 2-3으로 져 본선행이 좌절되는 쓴맛을 봤다. 이브라히모비치는 30대 중반의 나이를 감안하면 러시아 월드컵이 사실상 마지막 본선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그의 앞에 가시밭길이 깔린 것.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64)은 최근 FIFA 회장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공식 출마 선언은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에서 하겠다. 그렇게 해야 출마 후의 결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웨일스와 스웨덴의 경우를 보면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 속에 있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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