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란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상대와 내 장·단점들을 파악하면 경쟁이 두렵지 않다.
그런데 우한에서 진행 중인 2015동아시안컵(1∼9일)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 중국 일본 북한이 도전장을 내민 이번 대회는 ‘지피(知彼)’라는 측면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는 분위기다. 자신은 잘 아는데, 상대 파악은 타 대회와 달리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번 동아시안컵 각국 대표팀에 유독 새로운 얼굴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거의 모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대회 개막 전부터 우승을 다짐한 개최국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3팀은 100% 전력을 꾸리지 않았다. 대부분 2018러시아월드컵을 겨냥해 세대교체와 새 얼굴 점검에 초점을 뒀다. 특히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기간이 아닌 탓에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유럽파와 중동파를 차출할 수 없어 각국 대표팀에는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얼굴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제대로 모른다고 해서 상대 파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대전은 곧 정보전이다. 태극전사들을 이끄는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은 이번에도 상대를 파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선수들은 혹여 바뀔지라도 해당국 고유의 특색과 지도자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과 미팅, 식사 등 선수단 스케줄이 없을 때면 자신의 스위트룸에서 영상을 보고 또 본다. 대회 개막 전에는 상대국이 지켜온 팀 컬러를 점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현재는 이번 대회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상대국 전술과 선수 개인 습성까지 파악하고 있다. 덕분에 대표팀 소집 때마다 경기 이틀 전과 하루 전에 시행했던 비디오 팀 미팅처럼 이번에도 ‘원 포인트 레슨’이 가능해졌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우리 비디오 분석관이 (감독이 요구하는) 다양한 영상 편집본을 제작하느라 밤낮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정보에 대한 갈증이 선수단에만 있는 건 아니다. 취재진도 마찬가지다. 대폭 바뀐 상대국 전력 파악을 위해 기자들은 자국 대표팀과 관련한 일정 부분 자료들을 주고받으며 외국 기자들과 기사거리를 공유하기도 한다. 때론 지나친 애국심(?)을 발휘하는 이들로 인해 얼토당토하지 않은 내용들이 오갈 때도 있지만 상당수는 허용 범위 내에서 나름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일본의 한 기자는 “한일 양국뿐 아니라 북한도 낯선 선수들이 정말 많다. 이번 동아시안컵은 예년과 달리 타이틀 획득보다 각국이 선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