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위암수술 야구기자가 정현석에게 쓴 눈물편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8월 7일 05시 45분


한화 정현석. 스포츠동아DB
한화 정현석. 스포츠동아DB
돌아오겠다는 약속 지킨 ‘뭉치’
그 과정을 알기에 눈물이 나오

2015년 8월 5일, 그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소. 그대가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가슴이 벅차더니,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저미어 왔소.

그대는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다”고 미안해했지만, 난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며 그대에게 고마워했소. 그대가 절망한 그 깊이를 알기에, 그대가 희망한 그 높이를 알기에, 그대가 이렇게 힘차게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소.

5회말 수비에 앞서, 정현석이라는 이름 석자가 전광판 한화 라인업 7번 자리에 뜨고, 그대가 교체 좌익수로 투입되는 순간, 그대만큼이나 우리의 가슴도 뜨거워졌소.

들었소? 팬들의 함성을…. 보았소? 팬들의 눈물을… 느꼈소? 팬들의 응원을…. 상대팀인 SK 구단도 전광판에 ‘정현석 선수의 건강한 복귀를 축하합니다’라는 글을 띄워 그대를 맞이했잖소. 피도 눈물도 없고, 치열하고 삭막한 승부의 세계지만, 그때만큼은 우리 모두 하나 되어 그대를 뜨겁게 환영했소. 우리는 그렇게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소.

그라운드로 뛰어가며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모자를 벗고 인사하던 그대. 그 온화하면서도 싱그러운 미소가 참 멋있었소. 얼굴은 나만큼 핼쑥해졌지만, 마음은 나보다 더 넉넉해져 돌아온 것 같더이다. 그런데 말이오. 그대는 웃는데, 그런 그대를 보는 나는 왜 눈물이 나는 것인지….

기억하오? 우리 통화를 했던 그때…. 그대가 지난해 12월 위암 판정을 받고 위 절제 수술을 한 뒤,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가서 요양 중이었잖소. 2월에 미리 찾아온 따뜻한 햇살을 느꼈는지 “여기가 걷기에 참 좋다”며 웃던 그 목소리…. 그때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그대의 목소리는 참 밝았소. 그리고 참 씩씩했소.

그대는 나에게 “암도 초기라면 하늘이 준 기회”라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겪어보니 암 이까짓 거 별 거 아니더라”고 하지 않았소. 나에게 “꼭 그라운드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잖소. 나도 그대에게 “야구기자로 야구장에서 그대를 기다리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소.

그대가 이렇게 돌아와 줬기에 우리는 약속을 지키게 된 셈이오. 그래서 눈물나게 반갑고 고맙소. 수술 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다 미음부터 시작해 죽으로, 그리고 진밥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 위를 잘라낸 탓에 소량으로 하루 9끼씩 나눠 먹으며 몸의 적응력을 키워가는 그 경험…. 먼저 해 봤기에, 난 더 눈물이 났는지 모르오.

한화 동료들이 모자에 ‘뭉치’라는 별명을 새겨 넣고 그대를 기다려 왔던 것처럼, 나 역시 씩씩했던 그대의 목소리를 가슴에 담고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소.

복귀전에서 안타를 2개나 치고, 7회말 SK 이재원의 큼지막한 타구를 펜스 앞에서 잡아내는 호수비도 멋있었지만, 투수 배영수의 ‘고맙다’는 수신호에 손을 들어 답하던 모습은 이제 한화 팀원이라는 시그널처럼 보여 더 듬직했소. 그대에겐 다시 찾은 그라운드가 선물이겠지만, 우리에겐 그대가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선물이라오. 그런데 6일 LG전, 대전 홈팬들 앞에서도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더이다. 멀티히트를 뽑아내다니요. 깜짝 선물을 또 받으니 감동이 두 배이잖소. 그대를 기다리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인생엔 여백도 필요한 법이지 않소. 쉼 없이 달려오던 인생에 쉼표가 필요했다고 생각해주오. 이제 우리의 인생도 후반전이 시작되었소.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 생각하면 한여름 저 뜨거운 햇볕마저도 참 사랑스럽지 않소.

고맙소. 돌아와 주어 고맙소. 응원하오. 그대의 불꽃같은 앞날을 응원하오.

● 에필로그

기자는 2011년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던 10월에 건강검진을 통해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한국시리즈를 치른 뒤 11월에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위암 초기였지만 암세포 유형과 위치가 좋지 않아 위를 ‘전(全) 절제’ 해야만 했다. 위암 수술 3년 선배로서, 정현석 선수가 수술을 받았을 때 위로와 격려의 전화를 하며 조언을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은 ‘부분 절제’를 했다며 기자를 위로했다. 난 야구기자일 때 가장 행복하고, 정현석 선수는 야구선수일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대로 야구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암 판정을 받는 순간, 당사자보다 가족이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 곁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가까이에 빛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렇게 현장에 돌아와 다시 야구기사를 쓰고 있고, 정현석 선수도 이렇게 그라운드에 돌아와 야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도 암 판정을 받고 절망에 놓여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희망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이제 암도 이겨낼 수 있는 세상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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