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이승엽의 불운, 박병호의 행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7일 03시 00분


李, 2003년 56홈런 아시아新 불구 당시 ML엔 약물 거포 많아 푸대접
도핑 강화되며 해외 거포에 눈돌려… 朴에 대한 관심은 2014년 강정호 이상
최근 스카우트들의 朴에 대한 침묵… 분석 끝내고 정보유출 조심하는 듯

메이저리그 보스턴의 스카우트 존 김(오른쪽)과 피츠버그의 스카우트 장푸췬이 4일 목동구장에서 넥센 박병호를 지켜보고 있다. 채널A TV 화면 캡처
메이저리그 보스턴의 스카우트 존 김(오른쪽)과 피츠버그의 스카우트 장푸췬이 4일 목동구장에서 넥센 박병호를 지켜보고 있다. 채널A TV 화면 캡처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 존 김은 요즘 박병호 때문에 바쁘다. 스윙을 분석하고, 됨됨이에 대한 평판을 체크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피곤한 기색이다. 얼마 전 야구장에서 만나 박병호에 대해 물었더니, 예상대로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그래서 이승엽 얘기를 꺼냈더니, 긴장을 풀고는 씩 웃는다. 존 김은 2003년 이승엽의 미국 진출을 추진한 에이전트였다.

그는 “그때 이승엽은 참 운이 없었다. 시대가 그랬다”고 운을 뗐다. 이승엽은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을 쓴 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인 이송정 씨와 함께 다저스타디움을 방문할 정도로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자존심만 구기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당시 LA 다저스가 제시한 연봉은 100만 달러, 헐값이었다. 이승엽은 이후 일본 롯데와 계약했고, 기자회견장에서 감정이 북받쳤는지 펑펑 울었다.

이승엽도 어쩔 수 없었던 시대였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금지 약물에 취해 있었다. 배리 본즈가 2001년에 홈런 73개를 기록했다. 스테로이드로 무장한 홈런타자가 도처에 즐비했다. 이승엽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 구단들은 일본 야구는 인정했지만, 한국은 대놓고 차별했다. 이승엽에게는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도 없었다. 존 김은 “미국 구단들은 이승엽이 한국에서 독보적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실력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10여 년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게 달라졌다. 존 김은 에이전트에서 스카우트로 변신했고, 이승엽 대신 박병호를 지켜보고 있다. 그는 “박병호는 여러모로 좋은 시기에 태어났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가 2004년부터 금지약물 단속에 나서면서 거포들이 줄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박병호 같은 해외 거포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 한국 야구에 대한 평가도 확연히 달라졌다. WBC와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선전과 올 시즌 강정호의 활약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박병호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강정호 이상이다. 스카우트 경쟁은 일찍부터 치열해 벌써 20개 가까운 팀이 다녀갔다. 피츠버그의 스카우트는 “우리 팀만 해도 최소 3명이 와서 박병호를 살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피츠버그는 올해 ‘박병호 전담팀’을 꾸렸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또 다른 점은 ‘침묵’이다. 강정호 때와는 달리 일언반구도 없다. “잘한다”, “못한다”는 말도 안 한다. 한 에이전트는 “스카우트들이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주전 1루수로 뛰는 데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강정호로 한국 야구와 미국 야구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 박병호의 기량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스카우트는 “그만큼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상대팀에 혹시나 유리한 정보가 흘러들어 갈까봐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얼마 전 트레이드 시즌을 마치고, 해외 시장을 본격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이제 구단 고위급들이 움직인다. 박병호의 몸값은 이들 고위급 인사가 얼마나 많이 방한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부터가 진짜 게임이다. 박병호는 지금의 기량만 보여주면 된다.

윤승옥 기자 touch @donga.com
#이승엽#불운#박병호#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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