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인연이 사랑으로…외국인선수들의 ‘아름다운 동행’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8월 14일 05시 45분


두산의 모범 용병 더스틴 니퍼트는 2013년부터 매달 ‘사랑의 좌석’ 초청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에 초대받은 어린이들이 니퍼트(가운데 정면)를 향해 사랑의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즈
두산의 모범 용병 더스틴 니퍼트는 2013년부터 매달 ‘사랑의 좌석’ 초청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에 초대받은 어린이들이 니퍼트(가운데 정면)를 향해 사랑의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즈
린드블럼·니퍼트·테임즈, 소외아동 사랑
국내선수들은 시선 부담느끼며 선행 주저
선수 연봉은 팬에서 비롯…사랑 실천할때

#1.
롯데 조쉬 린드블럼(28)은 12일 오전 부산 연제구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종덕원’을 방문했다. 아내 오리엘과 큰 딸 프레슬리, 아들 파머와 함께였다. 이번 방문은 지난달 5일 ‘린동원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20명의 어린이들을 사직구장으로 초청한 것이 인연이 됐다. 약 한 달만의 재회였지만, 린드블럼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어린이들과 이야기꽃을 피웠고, 함께 캐치볼과 축구를 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종덕원에 필요한 진공청소기 3대까지 직접 사서 챙겨간 린드블럼은 친구들에게 “8월말에 피자를 사서 다시 오겠다”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린드블럼은 미국에서 아내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 ‘조쉬 린드블럼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돕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낯선 한국에 왔지만, 낮은 곳을 살피는 그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하다. 롯데 구단에 부탁해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을 야구장에 초청하고 싶다”고 요청하면서 시작된 ‘아름다운 동행’. 린드블럼은 지난달 자비로 티켓을 산 뒤 20명의 어린이들을 사직구장으로 초청해 롯데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공을 선물하고, 미리 준비한 도시락도 함께 나눠 먹었다.

‘린동원’은 시즌 초반부터 빼어난 피칭을 이어가자 롯데팬들이 전설의 투수 고(故) 최동원에 빗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실력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씨로 부산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2. 두산 더스틴 니퍼트(34)는 2013년부터 정기적으로 매달 ‘사랑의 좌석 초청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받는 큰 사랑에 작으나마 마음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구단에 부탁해 초청단체를 선정하고, 매월 30여명의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잠실구장에 부른다. 친필 사인 유니폼과 모자, 공뿐 아니라 햄버거 등 간식, 응원용 막대풍선까지 모두 자비로 구입해 선물하고 있다. 야구장에 처음 나들이를 와서 니퍼트를 만나고 돌아간 어린이들은 나중에 그림편지 등을 만들어 두산 구단 사무실로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준 ‘파란 눈의 키다리 아저씨’를 잊지 못한다.

#3. NC 에릭 테임즈(29)는 전반기 최종일인 16일 마산 SK전을 마치고 창원시내 한 바에서 자선행사를 열었다. 경남 고성의 ‘애육원’에 기부할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애육원에 도움을 주고 있는 미국인 지인을 통해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는 NC 김경문 감독도 경기 후 기꺼이 자선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고, 15명 가량의 동료 선수들까지 동참해 힘을 보탰다. 이 행사에는 400여명의 팬들이 모였다. 테임즈는 자신의 유니폼과 글러브, 친필사인 티셔츠 등 애장품을 경매로 내놓아 수익금 500만원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후반기 첫 주말 3연전인 지난달 25일 두산전에 애육원 어린이 20명과 관계자들을 초청해 꿈같은 하루를 선물했다.

최근 국내선수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졌다. 비시즌에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선수도 많아졌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선수도 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선수들은 어린이들을 야구장에 초청하는 행사에 부담을 많이 느낀다. 한 선수는 “마음은 있는데 주변에서 ‘유난스럽다’고 할까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외국인선수와는 달리 국내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대규모로 어린이들을 야구장에 초청하는 행사를 열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행여 성적 부진을 겪는다면 당장 팬들이나 구단, 감독 등으로부터 “선행은 비시즌에 하고 야구나 잘하라”는 말이 날아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고액 연봉자들이 재단을 만들고, 먼저 나서서 그라운드에서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문화를 형성할 때도 됐다. 누군가의 도움과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이들은 우리 주변에 많다. 그 어린이들이 나중에 훌륭한 우리의 이웃이 되고, 야구팬이 된다. 선수의 연봉은 팬들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라고 했다. 니퍼트, 테임즈, 린드블럼의 ‘아름다운 동행’이 감동을 주고 있지만, 우리 선수들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다. 마음이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자.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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