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밤을 꼬박 새웠다. 타이거 우즈 때문이었다. 국내 언론은 주목하지 않은 대회. 우즈는 윈덤챔피언십에 난생 처음 출전했다. 이 대회는 상위 랭커들은 불참하는 ‘그들만의 리그’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가 다음 주부터 4주간 열리기 때문이다. 상금을 제외하고 우승 보너스만 1000만 달러에 이르는 돈 잔치. 그래서 페덱스컵 순위 125위 밑의 선수들은 역전 출전권의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마지막 경합을 펼친다.
코스가 비교적 쉽긴 했지만 우즈는 최근 2년간 실망스러웠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오른쪽으로 자주 밀렸던 티샷은 페어웨이를 시원하게 갈랐다. 드라이브는 350야드까지 나왔다. 아이언은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곧장 핀을 향해 쏘아 올렸다. 입스로까지 의심받던 어프로치는 나쁘지 않았다. 전성기의 날카로움은 사라졌지만 퍼팅도 괜찮은 편이었다.
한마디로 우즈의 기량과 체력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타이거의 시대는 끝났다”는 일부 전문가의 혹평은 틀려 보였다. 그는 대회 내내 선두권을 달렸다. 타이거 효과는 대단했다. 2라운드가 끝난 뒤 4만5000장의 표가 더 팔렸다. 그들만의 리그가 초특급 대회로 탈바꿈했다.
많은 팬들은 우즈가 이 대회에서 우승해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획득한 뒤 페덱스컵까지 안는 시나리오를 기대했을 것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확률이지만 우즈이기에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황제의 귀환은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우즈는 4라운드 11번홀에서 온탕 냉탕을 오가며 트리플 보기를 한 끝에 공동 10위로 대회를 마쳤다. 오로지 우승을 해야만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었던 그는 187위이던 순위가 178위로 오르는 데 만족하며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우즈는 불륜과 이혼, 부상과 슬럼프의 잇단 악재를 맞이하며 황제의 위용을 잃은 지 제법 됐다. 하지만 올해 40세인 그가 여기서 멈춘다면 골프계는 물론이고 세계 스포츠계의 큰 손실이다. 골프는 나이가 들어서도 충분히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운동이다. 비제이 싱은 41세에 29세의 우즈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는 38승 중 18승을 40대에 거뒀다. 톰 왓슨은 60세에 브리티시오픈 우승컵을 거머쥘 뻔했다. 윈덤챔피언십에서 우즈를 따돌리고 우승한 선수는 51세의 데이비스 러브 3세였다.
우즈가 다시 기량을 회복해 내년엔 ‘타이거 키즈’로 불리는 세계 1위 조던 스피스, 2위 로리 매킬로이, 3위 제이슨 데이와 자웅을 겨루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매킬로이는 최고의 스윙을 자랑하지만 성적에 관한 한 우즈만큼 압도적이진 못했다. 체력 관리에 실패한 사생활도 황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만스러운 샷이 나왔을 때 스피스가 내뱉는 거친 언행은 우즈의 그것에 비하면 카리스마가 떨어져 보인다.
이런 걸 보면 필자는 참 보수적인 사람인 모양이다. 젊은 피로의 세대교체보다는 타이거의 독재가 이어지길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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