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5세 여중생이 대만과의 개막전 선발…시속 100㎞ 넘는 강속구 뿌려 한화 투수 김병근의 친동생, “오빠 덕분에 야구 시작…평생 하고파”
동그란 안경을 낀 만 15세의 여중생이 시속 100㎞가 넘는 공을 던진다. 계룡 리틀야구단 소속 선수이자 금암중학교 3학년 학생인 김라경 얘기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 소녀가 심장 부근에 태극기를 새긴 유니폼을 입었다. 28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2015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 대만과의 개막전에서 ‘코리아’ 팀의 첫 번째 투수로 당당히 마운드에 올랐다.
김라경은 한화 투수 김병근(22)의 친동생이다. 어릴 때 오빠가 야구를 하러 갈 때면 아빠와 엄마가 늘 야구장을 찾았고, 어린 딸도 혼자 집을 지킬 수 없어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그러다 오빠처럼 야구를 사랑하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나도 야구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고, 6학년 때 계룡 리틀야구단에 입단하면서 꿈을 이뤘다. 한국여자야구가 미래의 대들보 한 명을 얻은 순간이었다.
중학생이 된 뒤로는 공부에 대한 부담도 생겼지만, 평일 3~4시간 정도는 꼭 야구를 한다. 김라경은 “저녁에 학원이 끝나면 개인훈련도 빼놓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 결과는 무서웠다. 구속이 어느덧 최고 105㎞까지 올라왔고, 3월에는 리틀야구 사상 최초로 홈런을 때려낸 여자선수가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오로지 야구 생각밖에 없는 소녀에게도 ‘국가대표’는 상상도 못했던 영광이다. 김라경은 “어릴 때 이렇게 큰 경험을 해서 어른이 된 뒤에도 내 인생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당차게 말했다.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김라경은 “늘 남자애들하고 같이 야구하느라 통하는 게 많이 없었다. 솔직히 ‘여자가 야구해서 뭐하느냐’고 차별도 받아서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언니들하고 같이 하니까 공감도 되고 야구가 더 재미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도 그랬다. 국가대표 첫 경기, 게다가 상대는 난적 대만.
어린 선발투수는 잔뜩 긴장했다. 팔에 힘부터 들어갔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점수도 내줬다. 그때 언니들이 다가와 ‘뒤에 우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김라경은 “어린 내 눈에도 언니들이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무척 애쓰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울컥 눈시울을 붉혔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김라경은 그래도 야구가 좋다. 솔직히 말하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단다.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계속 야구를 하면서 한국에서 여자야구가 발전하고 더 많이 알려지는 데 공헌하고 싶다. 프로야구처럼 여자들도 야구를 직업으로 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게 내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이에 걸맞은 포부가 당차게 빛났다.
소녀투수의 패기는 결국 통했다. 김라경을 앞세운 한국A 팀은 소프트볼선수 출신 왼손투수를 선발로 내세운 대만의 ‘뱅가드’ 팀을 8-3으로 꺾고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김라경도 3이닝 3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제 몫을 해냈다. 대표팀 김주현 감독은 “라경이가 많이 떨렸을 텐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며 천진난만한 소녀선수에게 애틋한 눈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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