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기자의 온사이드]‘19전 13승’ 슈틸리케호, 랭킹은 왜 제자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이기는 축구다.”

꼭 1년 전 오늘. 울리 슈틸리케 감독(61)이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패스 성공률이나 볼 점유율을 따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하든 이기는 게 먼저”라며 “어떤 때는 공중 볼 축구가, 어떤 경기에서는 짧은 패스 위주의 축구가 승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기는 축구를 강조한 그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로 성적은 어땠을까. 지난해 9월 8일 이후 대표팀은 19번을 싸워 13번을 이겼다. 70%에 가까운 승률(68.4%)이다. 패한 건 3번뿐이다. 무승부는 3차례다. 이기는 축구를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기는 축구를 했으니 대표팀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올랐을까?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브라질 월드컵(2014년 6월 13일∼7월 14일)이 끝난 뒤 발표된 2014년 8월 한국의 FIFA 랭킹은 57위. 그런데 매달 발표되는 FIFA 랭킹에서 한국은 9월에도 57위다. 최근 1년 동안 한국은 69위까지 떨어지기도, 5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돌고 돌아 지금은 1년 전과 같은 순위다. 70%에 가까운 승률을 보였는데 랭킹은 왜 제자리일까?

FIFA 랭킹 산정 방식(FIFA 랭킹 포인트=승점×경기 중요도×상대 팀 랭킹 계수×상대 팀 소속 대륙 연맹 수준)에 답이 있다. 승점은 이기면 3, 비기면 1, 패하면 0이다. 지면 랭킹 포인트를 못 쌓는다는 얘기다. 경기 중요도는 친선경기 1, 월드컵 및 대륙컵 지역 예선 2.5, 대륙컵 본선 3, 월드컵 본선 4다. 대륙 연맹 수준은 최근 3차례 월드컵에서 거둔 연맹 소속 국가들의 성적을 기준으로 한다. 지금은 남미축구연맹이 1로 가장 높고, 유럽축구연맹이 0.99, 아시아 등 나머지 4개 연맹은 0.85이다.

승점, 경기 중요도, 상대 팀 소속 대륙 연맹 수준에 부여된 가산치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 팀 랭킹 계수는 다르다. 랭킹 계수는 ‘200―상대 팀 FIFA 랭킹’이다. FIFA 랭킹 2위 팀에 이기면 ‘승점 3×경기 중요도×랭킹 계수(198)×상대 팀 대륙 연맹 수준’이다. 랭킹 계수는 FIFA 랭킹 1위 팀에는 200을, FIFA 랭킹 150위 이하에는 모두 50을 준다. 승률이 떨어져도 어쩌다 센 팀을 잡는 이변을 일으키면 한꺼번에 많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약체만 골라 상대하면서 경기를 자주 치러도 짧은 기간에 포인트를 쌓는다. 이 때문에 FIFA 랭킹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축구인들이 꽤 있다. 7일 현재 FIFA 랭킹을 봐도 1위 아르헨티나, 2위 벨기에, 3위 독일, 4위 콜롬비아, 5위 브라질, 6위 포르투갈, 7위 루마니아, 8위 칠레, 9위 웨일스, 10위 잉글랜드다. 10위권 내라는 게 선뜻 납득이 안 가는 국가도 보인다. 한국대표팀이 8일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맞붙을 레바논이 FIFA 랭킹 133위라고 해서 얕잡아 볼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높은 승률만큼 랭킹이 상승하지 못한 건 상대 팀들의 랭킹이 높지 않았던 게 이유다. 지난 1년간 대표팀이 승리한 팀 중 FIFA 랭킹이 한국보다 높았던 팀은 없다. 파라과이(55위)가 지금은 한국보다 FIFA 랭킹이 높지만 대표팀과 맞붙은 지난해 10월에는 76위로 당시 66위의 한국보다 아래였다. 대표팀이 10월 13일 맞붙기로 한 자메이카는 한국보다 5단계 위인 52위다. 자메이카를 꺾으면 처음으로 상위 랭커를 잡게 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달 24일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 때 “이제 팀의 골격은 갖춰졌다”고 했다. 뼈대가 갖춰진 만큼 이제는 강팀을 상대로도 승리하는 대표팀을 기대해 본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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