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을 기준으로 하면 kt 최대성(30)이 평균 시속 145km로 1위입니다. 넥센 손승락(33·사진)은 144km로 2위고요. 홈플레이트를 통과할 때인 종속 기준으로는 손승락이 134km로 가장 빠릅니다. 손승락은 확실히 ‘빠르게 더 빠르게’ 공을 던지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투수입니다.
그런데 넥센이 팀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인 8연승을 하는 동안 마무리 투수 손승락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난타당하면서 1군 엔트리에서 빠졌기 때문입니다. 손승락은 올 시즌 21세이브를 기록하고 있지만 지난달 5일 이후에는 세이브를 추가하지 못했습니다.
올스타 휴식기 이전, 그러니까 전반기 때 손승락의 평균자책점은 2.48이었는데 후반기에는 10.13으로 치솟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애슬리트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군사용 3차원 레이저 기술을 활용해 각종 야구 자료를 수집하는 ‘트랙맨 베이스볼 스타디움’(트랙맨)으로 손승락의 투구를 분석해 봤습니다. 트랙맨은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 공을 때린 타구가 그라운드에 떨어질 때까지 총 27개 정보를 수집해 알려줍니다.
일단 속도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흔히 직구로 불리는 빠른 공의 속도를 보니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평균 시속 148km로 같았습니다. 모든 구종을 합치면 후반기 평균 구속이 시속 146km로 오히려 2km 더 빨랐습니다.
엄밀하게 따져 직구(直球)라는 표현이 틀린 건 실제로는 모든 공이 중력 영향을 받아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때 회전을 많이 하는 공은 ‘마그누스 효과’라는 물리 법칙에 따라 중력을 이기면서 덜 떨어집니다. 이른바 ‘라이징 패스트볼’이라고 부르는 공을 던질 수 있는 이유죠.
이것도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후반기에 빠른 공이 5cm 정도 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낙폭 38cm→33cm). 야구를 흔히 ‘인치(2.54cm)의 게임’이라고 합니다. 빼어난 투구와 아닌 투구가 1인치 차이로 결정되고, 배트 중심에서 1인치만 벗어나도 홈런이 평범한 뜬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손승락은 2인치 이득을 봤습니다. 야구 전문가들이 흔히 말하는 ‘공 끝이 살아 있는’ 상태. 9이닝당 삼진이 전반기 8.1개에서 후반기 15.2개로 늘어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위만 따지면 타자들이 손승락의 투구를 쳐내는 데 애를 먹어야만 합니다.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후반기에 손승락이 던진 공을 때려낸 타구의 평균 시속은 135km로 전반기보다 7km 더 빨라졌습니다. 타구가 빠르면 빠를수록 야수들이 처리할 때 애를 먹는 게 당연한 일. 후반기 들어 손승락의 범타처리율(DER)은 41.2%로 떨어졌습니다. 공을 때리면 범타보다 안타가 되는 비율이 더 높아진 겁니다.
문제는 역시 제구력이었습니다.전반기에는 오른손 타자 기준으로 스트라이크 존 안쪽에 탄착군(彈着群)이 생겼지만 후반기에는 한복판에 들어오는 공이 늘었습니다(그래픽 참조). 스트라이크를 잡으면 투수에게 유리하지만 스트라이크 존 자체는 타자가 치기 쉬운 영역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모든 구종을 합쳐 평균 구속이 가장 빠르다는 건 ‘느린 변화구’가 부족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공도 비슷한 속도로 계속 한복판에 들어오면 타자가 결국 타이밍을 맞추게 돼 있는 법입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강속구 투수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투수는 가만히 멈춰 있는 스피드건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타자를 상대합니다. 구위도 좋지만 역시 제구력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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