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드래프트 ‘마지막 지명’에 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2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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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 소식을 모르는 아버지는 연신 주차장 한편에서 담배만 피웠다. 다른 아버지처럼 번듯한 양복 차림이 아닌 이유였을까. 아버지는 딸의 취업을 결정하는 호텔 안으로 차마 들어서지 못했다. 취업이 확정된 딸은 힘차게 달려가 아버지 품에 안겼다. “운동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그러려면 집을 나가라”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딸은 이제 어엿한 프로선수다. 남은 과제는 ‘수련선수(연습생)’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다.

딸의 친구들도 착했다. 딸의 단짝 친구 강소휘(원곡고 3년·레프트)는 9일 열린 2015~2016 프로배구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의 지명을 받았다. 그 뒤 친구들 이름이 모두 불릴 때까지 강소휘는 두 손을 꼭 쥔 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학교 이한비(레프트)는 흥국생명에서 세 번째, 장혜진(센터)은 도로공사에서 다섯 번째로 이름을 불렀다. 딸의 친구들이 모두 지명자석으로 옮기고 딸 혼자만 대기석에 남게 되자 기도하는 사람은 세 명으로 늘었다.

결국 지명 포기를 포함해 30번째 순번에 IBK기업은행에서 아버지의 딸 김유주(리베로)를 찾았다. 이날 마지막 지명이었다. 김유주까지 자리를 함께하자 네 친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었다. 이날 드래프트 참가자가 모두 지명을 받은 학교는 경기 안산시 원곡고뿐이었다.

김유주는 “친구들과 아버지, 그리고 김동열 선생님(원곡고 감독)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코트를 등졌을 때도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믿어주셔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중학교 때부터 계속 같이한 친구들과 6년 만에 헤어지게 됐다. 다음에 자리를 같이할 때는 더 좋은 선수가 돼 만나고 싶다”며 울먹였다.

굳이 따지자면 청소년 대표 출신 강소휘나 이한비가 김유주보다 앞서 있는 게 사실. 그래도 열아홉은 성패를 논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다.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 중에는 연습생 출신도 있었다. 김유주는 그저 출발선 맨 뒤에 섰을 뿐이다. 언제나 그랬다. 마침표를 예쁘게 찍는 자만이 처음을 남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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