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츠 에이스 투구이닝 제한 압박… 구단에는 ‘악마의 에이전트’가
한화 투수들 보면 어떤 말 할까
메이저리그에서는 우리에게 낯선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스콧 보라스의 도발적인 발언도 그중 하나다. 보라스는 류현진을 LA 다저스에 입단시켰고, 추신수와 텍사스의 1억3000만 달러짜리 초대형 계약도 성사시킨 거물 에이전트다. ‘슈퍼 에이전트’로 통하지만 구단들에는 ‘악마’로 불린다.
보라스는 최근 ‘혹사 논란’을 일으켰다. 자신의 고객인 뉴욕 메츠의 에이스 맷 하비의 올 시즌 투구 이닝을 180이닝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구단을 압박한 것이다. 하비는 2년 전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의료진은 한 시즌 투구가 180이닝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비는 올 시즌 현재 170이닝을 넘겼다. 메츠는 올 시즌 9년 만에 가을잔치를 노리고 있다. 12승을 거둔 하비는 메츠의 에이스다.
‘팬들을 무시했다’는 논란이 거세지자 하비는 포스트시즌에 등판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보라스가 호락호락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2012년 시즌 15승을 기록하던 워싱턴의 에이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는 159이닝 만에 갑자기 출전을 중단했다. 스트라스버그는 그해 워싱턴의 포스트시즌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그 역시 2010년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에이전트는 보라스였다. 한국 정서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워싱턴 구단주는 최근 “당시 결정이 현명했다”고 말했다. 보라스가 마냥 모난 돌은 아닌 것이다.
국내 야구계도 혹사 논란이 한창이다. 하지만 초점이 다르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지휘하는 한화가 진원지다. 윤규진은 부상으로 쓰러졌고, ‘링거투혼’을 벌이고 있는 권혁은 구원 최다 패 신기록을 썼다. 불혹에 접어든 박정진도 잦은 등판에 구위가 시들해졌다. 희귀병을 앓았던 송창식에 이어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는 신인 김민우와 외국인 투수 로저스까지 논란의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한화의 ‘투혼’에 환호하던 팬들도 이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투수의 어깨는 던질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혹사를 따질 때가 아니고 무조건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고 일갈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의학계는 어깨를 과하게 쓰면 탈이 난다고 단언한다. 미국에서는 최근 5∼6년 사이 투수의 혹사에 대한 논문이 많이 나왔다. 피로할 때 던지면 부상 확률이 높아진다는 게 공통적인 결과다. 피로는 구속 저하와 제구력 난조로 나타난다. 다만 투구 이닝과 투구 수는 부상과 기계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본다. 투수마다 내구성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장 투수들은 투구 수가 누적되면 방어율이 분명 나빠지는 걸로 나온다.
뻔한 얘기 같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이런 연구 결과가 없다. 기댈 근거가 없으니, 논란이 있을 때마다 ‘투혼과 혹사’ 사이에서 헷갈릴 뿐이다. 그리고 그러다 만다.
혹사에 대한 국내 야구계의 무지와 관용은 선수단 젖줄마저 위협하고 있다. 2013년 프로에 입단한 신인 투수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조사 대상자 41명 중 37명이 팔꿈치와 어깨 등에 탈이 나서 통증에 시달렸거나 수술대에 올랐다고 한다. 멀쩡했던 선수는 단 4명에 불과했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서 고교 투수 혹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한화발 혹사 논란을 감정적으로 소모하지 말고, 이제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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