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내 최초 돔구장 고척스카이돔 3루 지하 불펜에서 만난 서울대 야구부 전혁주 씨(20·여·사진)의 말입니다. 서울대 야구부는 이날 여자 국가대표 팀과 고척돔 개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전 씨는 9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습니다. 서울대 야구부 38년 역사에 여자 선수는 전 씨가 처음입니다.
전 씨는 원래 야구부 매니저였습니다. 운동장에서 장난 삼아 선수들과 공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이광환 감독의 눈에 들었습니다. “다른 여성들과 달리 허리를 쓸 줄 안다”는 게 이 감독의 평가. 이 감독은 “뜻깊은 경기인 만큼 혁주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전 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피아노를 쳤고요. 이 감독은 “그래서 그런지 운동할 때도 리듬감이 아주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오빠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친오빠는 프로야구 kt 외야수 전민수(26)입니다. 전민수는 아직 1군 출장 기록은 없지만 올해 퓨처스리그(2군)에서 타율 0.395, 8홈런, 46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전민수는 “부모님께서 운동하는 나를 챙기시느라 바쁘셨다. 그래서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는데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늘 제 몫을 다한 자랑스러운 동생”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생은 “오빠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늘 아침에 부모님께서 ‘경기 잘하고 오라’면서 쇠고기를 구워 주셨다. 아마 오빠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호사일 것”이라고 받아치면서 “고기 값 하려면 일단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안타도 꼭 때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잔뜩 벼른 채 고척돔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미디어 데이’를 마련한 서울시에서 연습 시간도 제대로 확보해 주지 않았고, 경기장 방문 인원도 제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러리냐’라는 불만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일. 처음 중앙 전광판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뜰 때만 해도 ‘공무원들이 하는 일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다 고척돔 첫 번째, 그리고 자신의 인생 첫 번째 경기에 나서는 전 씨의 설렘이 느껴지면서 어느새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전 씨는 이날 3회초 첫 타석 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한 뒤 홈을 밟아 팀의 선취점을 올렸습니다. 이 득점은 고척돔 역사상 첫 번째 득점이기도 합니다.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뜬 서울대 야구부 소개 동영상에는 이런 구절이 나왔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이기지도 못하면서 그 힘든 야구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의미를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울대 야구부니까요.”
여전히 고척돔에 대해서는 기대만큼 우려도 많은 상황입니다. 저를 태우고 간 택시 기사님께 “가뜩이나 길이 막히는데 괜찮을까요?” 하고 여쭸더니 “다 큰 어른들이 머리 써서 한 건데 대책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고 대책을 찾다 보면 좋은 날도 오지 않을까요? 이제 고척돔에서는 겨우 5이닝짜리 한 경기가 열렸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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