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타점 1위·30홈런 페이스에 욕심 뭘 그리 욕심 내? 김경문 감독 충고에 번쩍 마음 비우니 kt전 만루포…긴 슬럼프 탈출
“프로에서 22년째 뛰고 있는데,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난 아직 야구 바보다.”
NC 이호준(39)은 모든 포수들이 한 목소리로 인정하는 ‘영리한 타자’다. 상대 배터리의 노림수를 역으로 파악해 찌르는 ‘예측 스윙’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로 22년차의 베테랑 타자는 자신을 “야구 바보”라고 표현했다.
이호준은 8월 12일 시즌 19호 홈런을 때린 뒤 1개월 넘게 침묵했다. 지독한 아홉수는 15일 마산 kt전 만루홈런으로 풀렸다. 이날 그랜드슬램으로 역대 27번째 3년 연속 20홈런, 역대 17번째 개인통산 1700안타, 역대 첫 ‘한 팀 3명 이상 100타점’ 등 많은 기록을 한꺼번에 달성했다.
이튿날인 16일 이호준은 모처럼 시원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며 후배들의 훈련에 흥을 더했다. 후반기 들어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깊은 슬럼프로 인한 시름을 모두 날린 모습이었다. 이호준은 “시즌 초반 타점 1위를 달렸다. 30홈런 페이스였다. 스스로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겠냐. 타점 1위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내리막길이었다. 그 전에는 타석에 서 있는 순간에만 집중했고, 아무런 욕심이 없었는데 그 때부터 엉망진창이 됐다. 프로에서 22년을 뛰고 있는데 아직 야구 바보, 멍청이인가 보다”며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겉모습으로 드러내지 않고 더 활기차게 분위기를 밝게 했어야 했는데, 점점 그런 모습도 줄어 든 것 같다. 동생(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깨달음은 4일 전에 있었다. NC 김경문 감독이 이호준을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뭘 그렇게 욕심을 내고 그래. 그 나이에 지금 성적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다. 시즌 전에 예상했던 이호준의 역할은 이미 다 해줬다”고 말했다. 이호준은 “감독님께 혼이 나고 다시 한번 내가 얼마나 바보인지 깨달았다. 다시 마음을 비웠다. 모창민이 ‘선배님, 제 방망이로 아홉수 깨주세요’라며 배트를 선물했다. 다른 동생들도 다 한 목소리로 응원을 해줬다. 다시 한번 팀의 소중함, 그리고 야구의 즐거움을 느꼈다. 복도 많다.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을에 동생들과 신나게 야구 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올해 마지막 경기의 승리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6월까지 이호준은 76안타 16홈런 71타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였다. 긴 부진으로 인해 9월 15일까지 홈런은 3개, 타점은 29개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꿈꿨던 타점 1위와 30홈런은 힘들어졌다. 그러나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