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좀 내린다 싶으면 야구장은 여지없이 늪처럼 변했고, 그곳에서 물방개가 헤엄쳤던 게 얼마 전 우리네 프로야구 경기장의 풍경이었다.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그라운드에 고인 물을 빼던 구장 직원이 물방개를 보고 경악한 게 2003년 일이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돔구장 시대가 개막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고척 스카이돔이 완공돼 내년 프로야구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물방개 사건 이후 10여 년 만이다. 상전벽해다.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겠지만, 국내에 또 하나의 돔구장이 예고돼 있다. 5년 뒤인 2020년 수원에 고척 스카이돔 2배 규모의 거대한 돔구장이 등장한다. 2013년 kt가 부영과 10구단 창단을 놓고 경쟁할 때 약속한 경기장이다. 당시 수원시와 손잡은 kt는 ‘야구발전기금 200억 원’을 비롯해 ‘돔구장 건설’과 ‘독립리그 창단’ 등 세 가지 핵심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수원 돔구장은 고척 스카이돔 이상의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수원시의 로드맵에 따르면 공사는 내년에 시작된다. 하지만 2년 전 부지 발표 말고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 부지도 수원시 소유가 아니라 나라 땅이니, 계획은 여전히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 kt와 경쟁한 부영이 전주에 1100억 원짜리 야구장을 짓겠다고 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급조한 카드가 돔구장이었다. 실현 가능성도, 타당성도 부족한 설익은 공약이었다.
애초부터 기대치가 낮았던 돔구장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실현 가능성이 높던 독립리그 창단까지도 은근슬쩍 보류된 건 무슨 까닭일까.
한 해 800명 정도가 취업시장에 나오지만, 프로행은 고작 100명 남짓인 야구 생태계. 연간 700명을 실업자로 만드는 상황을 타개할 거의 유일한 대안이 독립리그다. 야구의 존속과 관련해 돔구장 못지않게 중요한 사업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도내에 인구 40만 명 이상 도시가 12개나 되고, 전국에서 기업체가 가장 많은 지역이 바로 경기도”라며 표심을 공략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2년 동안 리그는커녕, 단 한 개의 팀도 만들지 못했다. 도 관계자는 “돈 때문에 지자체가 난색을 표하고, 지역 기업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팀당 연간 15억 원 정도의 운영비가 걸림돌이라고 했다. 일은 거기서 멈췄다.
그런데 ‘불가능하다던’ 독립리그가 경기도에서 자생적으로 싹트고 있다. 연천군에서 ‘연천 미라클’이라는 독립구단이 올해 창단했다. 70대에 접어든 우수창 단장은 벌써 제2구단 창단까지 준비하고 있다. 돈이 풍족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뛰고 있다. 우 단장은 “연간 5억 원이면 선수들에게 약간의 월급을 주고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15억 원이라는 운영비 산정부터가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양해영 사무총장은 “그간 독립리그와 관련해 경기도에서 단 한 번도 KBO에 문의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야구계에 큰 기여를 하겠다며 표를 달라고 했던 경기도, 수원시, 그리고 kt. 돔구장은 천천히 가더라도, 70대 야구인의 열정으로도 실행 가능한 작은 약속은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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