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G 효과’ 비밀은 ‘탈잠 효과’에 숨어 있습니다. 프로야구 LG 유니폼을 벗어서(脫)가 아니라 잠실구장을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잠실은 커도 너무 큽니다. 가운데 담장(125m)을 기준으로 잠실보다 큰 메이저리그 구장은 네 곳밖에 되지 않습니다.
큰 구장은 거포 유망주를 잡아먹습니다. 다른 구장에서는 홈런이 될 타구도 잠실에서는 평범한 뜬공으로 끝나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잠실을 14년째 안방으로 쓰고 있는 LG 박용택(36)은 “잠실은 젊은 타자들이 담장을 넘겨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잠실에서는 홈런 타자가 되기 쉽지 않다. 버릴 건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잠실 탓에
메이저리그에서는 구장이 선수에게 끼치는 영향을 ‘구장 효과’라는 말로 정리합니다. 2013∼2015년 국내 프로야구 9개 구장의 ‘홈런 효과’를 계산해 보면 잠실은 76.2(%)로 단연 최하위. 홈런이 평균보다 4분의 3(75%) 정도로 줄어드는 겁니다.
홈런이 줄면 OPS(출루율+장타력)도 줄어듭니다. 올 시즌 내내 OPS 1위를 달리고 있는 NC 테임즈(29)도 잠실에서는 OPS가 거의 반토막이 납니다. 홈런 1위 넥센 박병호(29) 역시 잠실에서는 힘이 빠집니다. 올 시즌 탈G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는 kt 박경수(31)나 SK 정의윤(29)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김동주(39·전 두산)가 아깝습니다. 16년 동안 잠실을 안방으로 쓴 김동주는 잠실에서 통산 OPS 0.880, 다른 구장에서 0.971이었습니다. 잠실(131홈런)에서는 29타석당 홈런이 하나였는데 나머지 구장(142홈런)에서는 홈런 1개를 추가하는 데 20타석이면 충분했습니다. 통산 273홈런(9위)을 쳤으니 다른 구장을 안방으로 썼다면 김동주는 삼성 이승엽(39)보다 먼저 400홈런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 잠실 덕에
그런 점에서 ‘버릴 건 버려야 한다’는 박용택은 남다릅니다. 박용택의 통산 잠실 OPS는 0.829로 나머지 구장(0.799)보다 높습니다. 두산 김현수(27)도 비슷합니다. 김현수의 OPS는 잠실에서 0.899, 나머지 구장에서 0.884였습니다.
레이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애슬릿 미디어’에서 운영하는 ‘트랙맨’은 군사용 레이저 기술로 타구 방향, 속도, 비거리 등 27개 정보를 수집합니다. 애슬릿 미디어 관계자는 “박용택은 넓은 외야 곳곳으로 라인드라이브 타구(정타)를 날리는 스프레이 히터다. 잠실에 최적화된 타자”라며 “김현수도 박용택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유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박용택 말처럼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극복하고 적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막내 구단 kt가 한발 앞서 가고 있습니다. kt는 안방 수원구장 기류를 분석해 홈플레이트에서 왼쪽 담장 쪽으로 바람이 자주 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른손 타자에게 유리한 구조인 거죠. 실제로 수원에서는 오른손 타자 OPS(0.837)가 왼손 타자(0.781)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는 왼손 타자 OPS(0.793)가 오른손 타자(0.783)보다 높습니다.
LG 시절 박경수는 한 시즌 최다 홈런이 8개밖에 되지 않았던 ‘노망주(늙은 유망주)’였습니다. 그를 영입하면서 kt 조범현 감독이 “20홈런을 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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