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선수가 적은 농구와 배구는 물론이고, 선수는 많아도 경기 수가 적은 축구는 ‘돈과 성적’이 비례하는 편이다. 승패가 소수의 스타 선수에 의해 좌우되는데 이들 특급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구단에 돈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종목들에서는 몇몇 팀이 리그 전체를 주도한다.
반면 야구는 돈과 성적의 상관관계가 상대적으로 낮다. 동원되는 선수가 많고, 경기가 매일 있고, 승패를 가를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팀이 부자 팀을 꺾는 경우가 빈번하면서, 대체로 리그가 경쟁적 균형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국내 프로야구는 ‘재계 1위’인 삼성이 휩쓸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4년 연속 통합 우승(정규시즌·한국시리즈 동시 우승)을 차지했고, 이변이 없는 한 올해도 왕좌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의 재력이 우승을 부른 것일까.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었다면 삼성은 처음부터 리그를 휩쓸었을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20년간 무관의 암흑기를 보냈다. 돈을 쓰고도 참혹했던 시간이었다. 게다가 최근 전성기는 거액의 슈퍼스타를 단 한 명도 영입하지 않고 이뤄냈다. 즉, 돈이 핵심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밀은 ‘시스템’에 있다. 야구는 수많은 사람이 개입한다.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프런트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이 역할의 적절한 분배, 그리고 상호 관계가 시스템이다. 삼성은 이 구획 정리와 소통이 잘 돼 있다.
선수 발굴과 육성만 봐도 시스템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삼성은 신인 구자욱이 뛸 자리가 없자 곧바로 군대(상무)에 보냈다. 병역을 마친 올해 스물두 살 젊은 유망주는 채태인 박한이 등의 선배들을 위협하는 슈퍼스타로 자라고 있다. 진갑용이 시즌 중반 은퇴했지만 이지영 이흥련 등 대체 자원이 보란 듯이 등장했다. 몇 년 뒤를 내다보고 준비했던 것이다. 삼성 류중일 감독이 “삼성은 이승엽이 없어도, 윤성환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팀”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유다. 이외에 전력 분석, 스카우트, 트레이닝 등 전반에 걸쳐 시스템이 가동된다.
한두 번 우승이 아니라 4∼5년 장기 집권이다. 다른 팀들이 아직 이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독주가 가능했다. 대부분의 구단이 감독 한 명의 리더십에 명운을 걸고 있다. 그런데 현대 야구는 감독 혼자 모든 걸 결정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 감독 역시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선동열 전 감독이 삼성 시절에는 우승 감독으로 찬양받았지만 KIA로 이적해 추락한 것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시스템 구축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오늘의 승리는 감독이 할 일이고, 내일의 승리는 구단의 몫이다. 2∼3년 계약직인 감독이 단기 승부에 연연할 때 구단은 시간을 들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 구단의 최고경영자(CEO)들 역시 대부분 2∼3년 계약직이다. 시스템을 추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프로야구에서 연속 우승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독주를 경계한다. SK가 올 초 시스템 야구를 선언한 것처럼, 프로야구 전체가 시스템 야구로의 전환이 거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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