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재호(30·사진)는 뚝배기처럼 천천히 끓어올랐다. 2004년 두산에 입단했지만, 1군에서 한 시즌을 뛰게 되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후에도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래 고아낸 국이 결국은 깊은 맛을 내는 법이다. 김재호가 바로 그랬다. 조금씩 팀에서 자신의 자리를 넓혀갔고, 어느새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올해는 그 성장의 정점이다. 김재호는 “2015년은 정말 행복이란 게 뭔지 알게 된 것 같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며 웃어 보였다.
김재호는 미소가 트레이드마크다. 늘 웃는 얼굴이다. 실책을 하고도 자기도 모르게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가 괜한 오해를 산 적도 많다. 그러나 올해는 정말로 좋아서 웃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일단 데뷔 때 목표로 삼았던 6개의 위시 리스트 가운데 2개의 항목을 한꺼번에 지웠다. 타율 3할, 그리고 국가대표 선발. 김재호는 올 정규시즌을 타율 0.307로 마감하면서 데뷔 후 최초로 3할 타율을 넘겼다. 2013년에도 타율 0.315를 기록했지만, 규정타석을 채우고 3할을 돌파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또 ‘2015 프리미어 12’ 국가대표로 뽑혀 당당히 태극마크를 단다. 그는 “올해 초 지네에 물리는 꿈을 꿨는데, 그게 재복이 많아져서 돈이 들어오는 꿈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재복보다 더 좋은 복이 들어온 것 같다”며 또 웃었다.
사람 김재호의 인생에도 더불어 좋은 일이 생겼다. 김재호는 곧 가장이 된다. 만난 지 10년, 그리고 연애한 지 8년 된 오랜 여자친구와 12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는 “결혼 승낙을 받고 나서 올해 야구도 더 잘 풀린 느낌”이라며 “우리 부모님과 장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사위가 될 것 같아서 더 기뻤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여기가 끝은 아니다. 김재호의 위시 리스트에는 아직 절반의 소망이 더 남아 있다. 올스타전 출전, 3할 타율, 태극마크는 이제 현실이 됐고,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골든글러브, 일본 진출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데뷔 시절에는 ‘이 많은 것 가운데 과연 몇 개나 이룰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제는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항목에도 ‘체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김재호는 “그래도 내가 조금씩 야구선수로서 발전은 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앞으로도 점점 좋아졌으면 좋겠다”며 “3할, 국가대표 선발에 팀의 우승까지 한꺼번에 해낼 수 있다면, 정말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결혼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순간을 위해 스스로도 마지막까지 힘을 쏟아 붓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