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머니볼의 한계, 넥센 ‘가을 잔혹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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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넥센 이장석 대표의 별명은 ‘빌리 장석’이다.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인 미국 프로야구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두 사람의 접점인 머니볼은 100여 년 빅리그의 ‘게임 법칙’을 뒤흔들었다. 돈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저평가된 가치(출루율 등)를 찾아내 경제적으로(보다 적은 비용으로) 승리를 사는 원칙을 제시했다.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의 2000∼2003년 연봉 순위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각각 25, 29, 28, 26위였다. 그런데 그 기간 오클랜드는 가을잔치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국내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팀 넥센도 2013∼2015년 연봉 순위는 각각 8, 7, 7위였지만 재벌가 구단들 틈에서 3년 연속 가을 무대에 초대받았다. 빌리 빈과 이 대표는 그렇게 연결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제 악평마저 공유하게 됐다. 정규시즌은 잘하는데, 가을 무대에서 초라하다는 점도 같아졌다. 오클랜드는 머니볼 시대에 4년 연속 가을 무대에서 쓴맛을 봤고, 넥센 역시 14일 처참한 패배로 3년 연속 가을에 울었다. “나의 이론(머니볼)은 가을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10여 년 전 빌리 빈의 넋두리가 이제는 이 대표의 가슴을 후비고 있다.

“머니볼은 왜 가을에는 이기지 못할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당선을 두 번 연속 맞혀 화제가 된 야구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가 이 답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1972년부터 1995년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80개 팀을 분석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실점을 막는 것(수비력)은 포스트시즌 성공과 관련이 크지만, 득점을 하는 것(공격력)은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방망이가 약해도 마운드(수비)가 좋은 팀은 이 기간 7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수비가 약한 팀은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실버가 제시한 우승 3요소(마무리 투수, 탈삼진, 팀 수비)에 모두 수비가 관련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판 머니볼’ 넥센의 가을 잔혹사도 이 분석틀로 설명된다. 넥센은 전형적인 타격의 팀이다. 최근 3년간 팀 홈런과 득점 등에서 대부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팀 평균자책점과 실점 등에서는 5∼6위권으로 평균 이하였다. 실버의 분석대로 가을잔치에 돌입하자 박병호 등 무시무시한 타자의 강점은 두드러지지 못했고, 취약한 마운드의 약점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타자(공격)는 관중을 기쁘게 하고, 투수(수비)는 감독을 기쁘게 한다’는 야구계의 격언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넥센은 왜 마운드 구성에 실패했을까. 결국 자본의 한계였다. 넥센은 구단 운영이 어려웠던 2010년 즈음 장원삼(삼성)과 이현승(두산) 등 귀중한 선발 투수 자원을 현금을 받고 팔았다. 그러고는 그 빈자리를 복구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타자는 길러 써도 되고, 시장에서 영입하더라도 몸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 그런데 투수는 쉽게 육성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려고 해도 너무 비싸 좀처럼 엄두를 낼 수 없다. 마운드 구축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고, 복구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넥센은 지난해 강정호를 메이저리그로 보냈고, 올해는 박병호가 빅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다. 유한준과 이택근 등도 자유계약(FA) 선수 자격을 얻기 때문에 클린업 트리오가 해체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새 틀을 짤 수밖에 없는 시기가 됐다. 게다가 넥센은 내년부터 고척 돔구장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새 부대에 새 술이 담길지 주목된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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