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궁인들 사이에서 종종 거론되는 이름이 있다. 고(故) 이병탁 전 경상북도양궁협회장이다. 1980년 실업양궁연맹을 창설한 이 전 회장은 수십여 년 동안 한국양궁 발전에 헌신했다. 1983년 실업팀 예천군청을 창단하고, 안동대 등 지역학교 양궁부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장용호 김수녕 윤옥희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예천군청 출신이고, 국가대표팀 문형철 총감독은 1984년 코치로 시작해 30년 넘게 예천군청 지도자로 활약 중이다. 대한양궁협회 김기찬 부회장은 “이 전 회장의 노력이 한국양궁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한 세대를 걸러 먼 내일을 바라보는 예천군청 소속의 젊은 궁사가 있다. 강원도 일대에서 진행 중인 제96회 전국체육대회(16∼22일)에 출전한 김규찬(25)이다. 이 전 회장의 외손자인 그는 21일 원주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리커브 남자 일반부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앞서 금 1·동 3개를 획득해 모두 5개의 메달을 땄다. 김규찬의 표정도 홀가분했다. “이렇게 좋은 성과가 나온 건 처음이다. 전국체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그가 양궁인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외조부의 영향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양궁을 해보라”는 이 전 회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지금에 이르렀다. 두 살 터울의 형이 있었지만, 외조부는 “어릴 때 시작하는 게 좋다”며 둘째 외손자에게 힘을 실어줬다.
외조부의 정성이 깃든 팀에서 묵묵히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김규찬은 그리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아직 무명에 가깝다. 2013년 전국체전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며 주목받는 듯했지만 곧 잊혀졌다. 2014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등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극심한 슬럼프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금세 제 페이스를 찾았다. “훈련 때만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은 양궁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을 편히 먹었다. 다행히 계속 기록이 올라온다. (전국체전에서) 개인최고기록이 나왔다.”
김규찬은 이제 새로운 목표로 향할 참이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다. 험난한 관문이 그를 기다린다. ‘올림픽 메달보다 더 어려운 올림픽 출전’이란 표현처럼 먼 길이다. 다음달 초 2016년도 국가대표 재야선발전을 통과(8명)한 뒤 내년 초 2015년도 국가대표 1·2진(총 8명)과 최종 실력을 겨뤄야 한다. 물론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소속팀 스승인 문 총감독은 “잠재력이 있다. 재야선발전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했고, 김 부회장도 “늘 꾸준하다.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라고 칭찬했다.
김규찬의 롤 모델인 오진혁(34·현대제철)도 5년 전인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계기로 뒤늦게 꽃을 피운 선수다. 한순간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것보다 ‘늘 지금처럼’ 일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가 향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