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11월호/권말부록 | 2018 평창, 그리고 미래]
평창올림픽 준비현장 르포
● “新공법으로 품질 향상, 工期 단축”
● 철거냐 잔존이냐, 결정 안 된 시설 많아
● 사후 시설물 복원·철거 비용 엄청날 듯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동쪽을 향해 뻗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원주-강릉 간 고속철도를 뚫는 현장이다. 횡계IC를 빠져나와 강원도 평창군에 들어와서도 ‘올림픽 건설’에 분주한 현장이 여럿 눈에 띈다. 도로 곳곳이 확장 공사 중이고, 용평 돔체육관 옆에서는 올림픽 선수촌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알펜시아 리조트 내 슬라이딩센터 공사 현장. 스키점프 관광전망대에 올라서면 커다란 구렁이가 구불구불 기어가는 듯한 슬라이딩센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메달 9개가 걸린 썰매 종목(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경기장으로, 총 길이는 2018m. 현재 절반 가까이 공사가 진행됐다.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아시아에서 일본 나가노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지는 썰매경기장으로, 알펜시아를 알펜시아답게 만드는 시설물이라 할 수 있다. 알펜시아는 알프스를 뜻하는 독일어 알펜(Alpen)과 아시아(Asia)를 조합한 단어로, ‘아시아의 알프스’란 뜻이다.
선두 나선 슬라이딩센터
“자랑 좀 하겠습니다. 슬라이딩센터가 목업(mock-up, 모형) 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했어요. 콧대 높은 유럽 사람들도 우리 기술력과 건설 속도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알펜시아에서 만난 이규운 강원도 동계올림픽본부 설상시설과장은 그간 고충이 컸던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슬라이딩센터는 트랙 6m 구간을 먼저 만들어 각 경기연맹의 인증을 받아야 나머지 공사를 개시할 수 있는데, 보통은 네댓 번 탈락하기 마련이라고 한다(소치는 6번 시도 끝에 통과했다). 하지만 이 공사를 맡은 대림산업은 건설 현장에서 철근을 조립하는 기존 공사 방식을 따르는 대신 공장에서 철판을 잘라 만드는 새로운 공법을 고안해냈다. 이 과장은 “덕분에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평창올림픽 예산은 13조 원가량(표 참조). 이 중 고속철도 등 접근도로망에 투입되는 예산이 9조5000억 원, 운영비가 2조 원이고 나머지가 1조5000억 원으로 경기장 11개와 개·폐회식장, 선수촌 두 곳 등이 건설된다. 경기장 공정률은 슬라이딩센터가 가장 높고, 개·폐회식장과 같이 아직 설계도가 확정되지 않은 시설물도 있다.
알펜시아와 정선 알파인 경기장 등에서 설상경기가 벌어진다면, 빙상경기는 인근 강릉에서 펼쳐진다. 경포호와 가까운 강릉종합운동장 건너편에는 현재 강릉스피드스케이팅센터, 강릉하키센터, 경포아이스아레나(쇼트트랙 및 피겨스케이트 경기장)가 앞다퉈 공사 속도를 낸다.
이 중 강릉하키센터는 올림픽 종료 후 철거냐 잔존이냐를 놓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인데,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철거 후 원주 이전’을 전제로 진행된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최동혁 태백건설산업 공사부장은 “철거와 이전이 용이하도록 철골과 외벽 슬라브를 15m 크기로 잘라 짓는다”고 설명했다.
경기장 공정률은 10%에서 46%로 제각각인데, 사정이 가장 급한 곳은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다. 이 경기장에서 내년 1월 27일 트레이닝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에, 그전까지 현재 32.8%인 공정률을 60%로 높여야 한다. 트레이닝 이벤트란 올림픽에 앞서 경기장 성능을 점검하는 것으로, 각국 대표선수들이 모여 국제대회인 국제스키연맹 극동컵(Far East Cup)이 펼쳐진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원시림 훼손에 반발한 환경단체의 반대로 공사가 지연된 데다, 당초 예상보다 지력이 약해 곤돌라 건설에 차질을 빚는다. 이 과장은 “실제 땅을 뚫어보니 분적토가 많아 곤돌라 파일을 박아 넣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재 새벽 2시까지 작업하는데 앞으로는 24시간 공사 체제로 돌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민간 매각 힘들 텐데…”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들을 탐방한 ‘신동아’가 내린 ‘성공 올림픽의 조건’은, 올림픽 경기장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사후 활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성 있는 사후 활용 계획을 짜고, 그에 맞춰 경기장을 설계해야 올림픽 이후에도 시설물을 활용할 수 있고 적자 폭 또한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탈리아 토리노의 아이스하키 경기장 팔라올림피코는 좌석뿐 아니라 내부 벽까지 움직일 수 있게 설계했다.
물론 강원도도 이미 경기장 사후 활용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현재 관리·운영 주체가 결정된 시설이 7개, 협의 중인 시설이 1개, 그리고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는 곳이 4개다. 한편 강원도는 7월 공무원과 유관기관, 체육계, 전문가 등 44명으로 구성된 사후활용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시설별 사후활용 계획 적정성 검토에도 나섰다.
하지만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사후 관리 방안 마련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포아이스아레나는 강릉시가 관리를 맡아 실내수영장 등 시민체육시설과 테마형 엔터테인먼트 플라자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이 참여해 어떤 시설을 마련할 것인지 정해진 바 없다. 강릉스피드스케이팅센터는 태릉을 대체하는 선수 훈련시설로 활용할 계획인데, 70% 이상의 선수가 서울 및 수도권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을 강릉까지 오도록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한국체육대학과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국내외 선수 훈련장으로 활용하며 동시에 국내외 경기를 유치하겠다는 복안이지만 과연 계획대로 될지도 의문이고, 또 이것만으로 적자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최초의 슬라이딩센터인 나가노의 ‘스파이럴’도 활용도가 낮아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슬라이딩센터 운영 적자가 연간 18억 원쯤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추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가 관건인 곳들도 있다. 당초 계획대로 강릉하키센터를 원주로 이전한다면, 그 비용으로 600억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환경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대회 이후 전체 면적의 55%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는데, 그 비용 또한 어마어마하다. 강원도 관계자는 “나무를 다시 옮겨다 심고 일부는 양묘(養苗)하는 데 약 1000억 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편 비드파일(유치계획서)에는 없던 개·폐회식장의 사후 활용에 대해서는, 4만 좌석 중 1만5000석만 남기고 나머지는 철거하고 시설 일부에 올림픽 기념관을 마련한다는 계획만 나온 상태다. 인구가 5만 명도 안 되는 평창이 이 시설물에 콘서트 등 대형 이벤트를 유치할 수 있을지 회의 어린 시각을 보내는 이도 많다. 문체부 관계자는 “적자가 뻔히 예상되기 때문에 시설물들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도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2월 염동열 국회의원 주최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산과 사후활용방안 토론회’에서 이명식 동국대 교수(건축정책학회 부회장)는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장들의 사후 활용 실태 분석을 통해 흑자를 내기 위한 요건으로 △치밀한 사전 계획 △교통 접근성 개선 △수익성 높은 임대 사업 △다양한 경기 및 공연 유치 △지역민들과의 유대 형성 등을 꼽았다. 이 기준에 비춰본다면 평창의 갈 길은 아직 먼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알프스’로 남기 위해
“동계올림픽 유치 당시에는 국민적 성원이 대단했는데, 지금은 돈 먹는 하마 취급을 받는 기분이다” “우리나라 경제력이 세계 10위 안팎인데, 적자가 나더라도 겨울스포츠 시설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2017년 12월 강릉까지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인천국제공항에서 평창까지 2시간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관광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창과 강릉에서 만난 동계올림픽 관계자들은 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최근 국내 여론에 대한 서운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평창은 산재한 난관을 뚫고 올림픽 이후에도 ‘아시아의 알프스’로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까. 올림픽 개최까지 남은 2년여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다. 평창·강릉=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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