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박진만(39)은 아직 코치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다며 웃었다. 영원히 ‘국민 유격수’일 줄 알았던 박진만이 26일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현역으로서 마지막 인터뷰, 박진만은 “(7경기 남은 2000경기 출장 등) 아쉬운 것들이 없진 않지만 시기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은퇴에 대한 생각은 품고 있었다. 그러다 9월 오른쪽 무릎 부상을 입었고, 내년 후반기에나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자 생각을 굳혔다.
박진만은 은퇴 후 제주도에서 지내는 가족과 당분간 시간을 보내며 가장 노릇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SK에서 코치직을 제안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좋은 지도자가 되라”는 아내의 응원에 수락을 결심했다.
● 야구한 인생이 행복했다!
1996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현대에 입단했던 박진만의 야구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은퇴를 결정하고 잠들기 전, 내 야구인생이 기차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처럼 겹쳐졌다. 아름다운 산, 반짝이는 강물, 어두운 터널도 있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6번 했다. 이밖에도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김재박 전 감독님과 똑같이 수상(5회)했다. 대표팀 나가서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도 땄다. 그 순간을 같이 해준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다. 야구한 인생이 행복했다.”
선수인생의 가장 큰 아쉬움은 2011시즌부터 5년간 뛴 고향팀 SK에서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는 “가는 팀마다 우승했는데 SK에서 못 했다. 현역으로 못한 것을 코치로서 해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약속했다.
● 기본에 충실한 코치가 되겠다!
20년의 프로선수생활을 마감한 박진만은 SK 1군 수비코치로 2016년 새롭게 출발한다. 박진만은 “메인 수비코치 후쿠하라 코치를 옆에서 돕겠다. 올해까지 선수를 했으니 선수들에게 조언과 경험을 얘기해주겠다”고 말했다.
박진만은 현대에서 1998, 2000, 2003, 2004년 등 4차례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프리에이전트(FA)로 2005년 삼성에 이적한 뒤에도 2005, 2006년 2차례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한국야구 영광의 순간에는 늘 그가 있었다.
프로통산 1993경기에 출장해 1574안타(타율 0.261) 153홈런 781타점 94도루를 남긴 그는 기록보다 기억으로 더 남는 선수였다. 어려운 볼도 쉽게 잡는 박진만의 글러브 핸들링은 내야수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박진만은 “나도 프로에 처음 들어왔을 때 기본기를 반복해 배웠다. 그것이 습득되고 자신감이 바탕이 돼야 그런 플레이가 나온다. 기본기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