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은 지난주 한국시리즈 3차전 때 일반석에서 팬들과 똑같이 비를 맞아가며 응원을 펼쳐 화제가 됐다. 야구단에 대한 평소 철학이 그대로 묻어나는 장면이었다. 그는 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직후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팬의 한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이지, 야구단 운영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원은 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야구단에 관한 한 전문가 집단(프런트 등)을 신뢰하고, 운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박 회장은 “비전문가인 회장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팀의 경쟁력을 낮추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한두 명의 스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선수단 전체가 어우러지는 팀 컬러를 유지하도록 주문한다. 그 결과 두산은 국내에서 성적과 문화를 모두 갖춘 거의 유일한 팀으로 평가된다. NC가 창단 때 두산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넥센을 뺀 국내 9개 프로야구단은 모기업으로부터 한 해 200억∼300억 원의 운영비를 지원받는다. 따라서 오너의 관심과 철학이 곧 팀의 색깔이 되고 팀의 전체 경쟁력으로도 연결된다.
두산과 잠실구장을 같이 쓰는 이웃 LG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오너 일가의 야구에 대한 애정은 두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2군 선수들의 프로필은 기본이고 투수의 경우 ‘투구 때의 어깨 각도’까지 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관심도 지나치면 역효과가 난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오너가(家)의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다. 실제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야구계에서 LG의 부진을 설명할 때 늘 거론되는 말이다.
LG와 반대로 롯데는 수익이 나지 않는 야구단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2000년대 초반 사직구장을 방문해 팀이 꼴찌인 것을 확인한 뒤 “우리 롯데가 이렇게 못하나?”라고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그 무관심 기조 속에 지난해 그의 조카인 신동인 구단주 대행은 선수단에 대한 폐쇄회로(CC)TV 불법 사찰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관심도, 철학도 부재했던 것이다.
롯데가 방목형이라면 삼성은 야구단 역시 ‘제일주의’ 철학을 바탕에 깐 철저한 관리로 정평이 났다. 20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삼성 야구단은 성적을 내며 1등주의의 전도사가 됐다. 다른 구단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해 작년까지 4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그런데 성능(순위)은 압도적으로 뛰어났지만 삼성 야구 하면 떠오르는 문화는 아직 없다.
프로 야구단은 산업적으로 봤을 때 가치 있는 계열사는 아니다. 늘 적자이고, 앞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기업과 총수에 대한 대외 이미지와 주위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수단으로 갈수록 중요시되고 있다. 삼성은 내년부터 창의적 집단인 제일기획 소속이 되고, 롯데는 어쨌든 새로운 리더십에 편입될 예정이다. 내년 프로 야구단 운영에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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