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일본한테 한 점도 못 내고 질 수 있죠. 그런데 올 시즌 전체를 보면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세 체급(?)에서 모두 완패했거든요. 18세 이하 한국 청소년 대표팀은 일본에 0-12로 졌고(7회 콜드패), 대학생들이 뛴 유니버시아드 대표도 0-8로 졌습니다. 프로 선수들이 나선 프리미어12 대표팀도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0-5로 졌고요. 이 정도면 한국 야구가 위기라고 불러도 좋을 상황에 처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역시 투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8일 경기를 보면서 오타니 쇼헤이(21·니혼햄)가 부러우셨죠? 그런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을 상대로 8이닝 2실점(1자책점)으로 승리투수가 될 때 김광현(27·SK)의 나이도 20세였습니다. 그때 김광현의 바로 1년 위에는 ‘더 몬스터’ 류현진(28·LA 다저스)이 있었고요. 이 두 선수뿐 아닙니다. 권혁(32·한화), 윤석민(29·KIA), 장원삼(32·삼성), 한기주(28·KIA)까지 베이징 올림픽 대표 투수 10명 중 6명(60%)이 25세 이하였습니다. 평균 연령은 24.6세.
이번 프리미어 대표팀의 투수 13명 중에서는 4명(21.4%)만 25세 이하입니다. 심창민(22·삼성), 이태양(22·NC), 조무근(24·kt), 조상우(21·넥센)입니다. 보시다시피 선발 투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대표팀 투수의 평균 연령도 27.6세입니다.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대표팀 명단에서 빠진 임창용(39), 윤성환(34), 안지만(32)이 교체되지 않았다면 대표팀 투수의 평균 연령은 더 올라갔을 겁니다.
프로야구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25세 이하 투수들이 던진 이닝을 모두 더하면 3098이닝. 전체 1만2788이닝의 24.2%입니다. 프로야구 34년 동안 25세 이하 투수가 던진 이닝 비율이 39.8%인 걸 감안하면 확실히 비율이 줄었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19.9%에서 올해 신생 팀 kt가 합류하며 비율이 늘어나서 이 정도입니다.
일본은 어떨까요? 올해 일본 프로야구 양대 리그의 전체 이닝은 1만6574와 3분의 1이닝. 이 중 30.4%에 해당하는 5108과 3분의 1이닝을 25세 이하 투수들이 책임졌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투수일수록 투구 이닝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투수라는 건 아웃을 잘 잡아낸다는 뜻이고, 아웃 3개가 쌓이면 한 이닝이 되니까요.
물론 한국은 투수 대부분이 2년간 군에 간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하지만 좋은 투수일수록 병역 혜택을 노리고 입대를 늦추는 일도 많으니 25세 이하 투수들의 이닝 비율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고교 시절 혹사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일 테고요.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이 늘어나는 것 역시 일본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이 언제부터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젊은 강속구 투수를 일단 불펜으로 보내는 게 유행처럼 번진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불펜에서 경험을 쌓고 선발 투수가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불펜 투수로 굳어지는 거죠. 선발 투수는 외국인 선수가 두 자리나 책임져 줄 수 있으니까요.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프로 팀 운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프로는 프로고 국제대회는 국제대회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이렇게 젊은 선발 투수가 나오지 않으면 프로야구도 계속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삿포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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