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은 승자와 패자의 차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나중에 싸우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싸우고 나중에 승리를 구한다.” ‘이겨 놓고 싸운다(先勝以後求戰)’는 말은 이기는 조건을 먼저 갖춰놓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뜻이다.
프로야구 넥센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포스팅(비공개 입찰)에서 이 지침대로 승리했다. 미네소타로부터 1285만 달러(약 147억 원)의 거액 응찰금(이적료)을 제시받기 위해 1년간 치밀하게 준비했다.
박병호는 올해 초 에이전트를 선임하고, 곧바로 미국 구단들에 빅리그 진출 의사를 알렸다. 연초 미국 전지훈련장에 빅리그 스카우트들이 몰려든 이유였다. 에이전트는 미국 내 30개 구단들에 지속적으로 박병호의 정보를 제공했고, 구단들은 1년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박병호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했다. 스윙은 기본이고 성격과 대인 관계, 그리고 가족 사항까지 모든 걸 충분하게 따졌다.
또 현지 유력 매체들이 박병호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언론 보도는 직간접적으로 에이전트와 관련돼 있다. 에이전트가 뛰지 않으면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주기적인 보도는 에이전트가 활발하게 움직였다는 증거였고, 성공 확률이 높다는 신호였다.
박병호는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전쟁(입찰)을 시작해 거액의 이적료를 받아냈다. 말 그대로 먼저 이겨놓고 싸운 것이다. 물론 ‘강정호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호재도 스스로 ‘시간과 정보’라는 핵심 요소를 효과적으로 관리한 덕분에 누릴 수 있었다.
이제 손아섭(사진)과 황재균(이상 롯데)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후발 주자들은 아무래도 걱정이다. 박병호와 반대로 ‘먼저 싸우고 나중에 승리를 구하려는’ 모양새다. 손아섭과 황재균은 8월 즈음해서 빅리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카우트들은 “시기적으로 늦었다”며 입맛을 다셨다. 기량과 인성 등 이모저모 따지기에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단 고위 관계자에게 보낸 보고서가 아무래도 헐거웠다.
시간이 없으니, 준비 과정도 당연히 벼락치기다. 모 구단 스카우트는 얼마 전 “황재균의 에이전트가 누구인가? 누구한테 무슨 정보를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아섭도 별반 다르지 않다. 4주 군사훈련 시기가 해외 진출 기간과 겹치면서 입찰 일정을 잡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이 때문에 스카우트들은 상부에 정확한 포스팅 시점을 보고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롯데는 12일에야 “손아섭 선수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참가를 위해 16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공시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양현종(KIA)과 김광현(SK)이 예상보다 낮은 몸값을 제시받았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준비 부족이다. 양현종은 시즌 후반에 움직여 시간이 부족했고, 김광현은 서둘렀지만 에이전트가 제대로 영업을 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는 필요한 선수에게는 수백억 원도 쉽게 쓰지만, 그렇지 않으면 1원도 쓰지 않는다. 큰돈이 도는 시장이라 철저히 전략적으로 판단한다. 급하게 나온 매물, 불확실한 매물에 즉흥적으로 큰돈을 쓰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서는 그들의 문법대로 설득을 해야 한다. 이게 ‘포스팅 병법’의 핵심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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