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릉선수촌 주변 삼계탕 집에서 만난 펜싱 플뢰레 국가대표 허준(27·세계랭킹 13위·사진)은 빨간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태극기가, 등에는 ‘KOREA’ 다섯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대표팀 단체복이었다. 너무 국가대표 티를 내는 것 아니냐는 말에 그는 “좀 알아보라고요(웃음)”라고 했다.
허준은 6일부터 3일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펜싱 국제월드컵대회에서 2위에 올랐다. 지난해 9월 인천 아시아경기 은메달 이후 413일 만에 시상대에 올랐다. 올 1월 파리 월드컵 단체전 경기 중 입은 부상이 긴 부진의 시작이었다.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아예 다리가 안 구부러졌어요.” 검사 결과는 무릎 연골 파열. 작은 키(168cm)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두세 배 더 뛸 수밖에 없었던 그의 무릎이 결국 탈이 난 것이었다.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후 재활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그는 5월 대회에 나갔다. “올림픽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여부는 내년 3월 발표되는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수술로 이미 월드컵 2개 대회를 건너뛴 그로서는 국제펜싱연맹(FIE) 포인트를 쌓기 위해 더 이상 쉬고만 있을 수 없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펜싱에서 한국이 종합 2위(금 2, 은 1, 동 3)라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둘 때 허준은 경기장이 아닌 군대 내무반에 있었다. 올림픽 티켓을 따지 못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기 때문이다. 허준에게 리우 올림픽 출전이 간절한 이유다. “금메달을 따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운동선수로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 보는 것 자체가 꿈이죠.”
이번 월드컵 준결승에서 그는 인천 아시아경기 때 1점 차로 이겼던 일본 오타 유키(세계랭킹 2위)를 다시 만났다. 결과는 15-10, 허준의 완승이었다. 오타 유키는 올 하반기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유키는 대회에서 볼 때마다 기술과 타이밍이 좋았어요. 키도 저랑 별 차이 안 나거든요.” 오타 유키의 키는 171cm. 펜싱선수로는 작은 편이다. “너무 잘하니까 어떤 기술을 잘하는지, 어떤 타이밍에 공격하는지 영상을 찾아서 계속 봤어요.” 허준은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알렉산더 마시알라스(21·미국)에게 10-15로 패했지만 이번 메달로 다시 희망을 갖게 됐다.
허준은 16일부터 계룡시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20회 김창환배 전국 펜싱대회에 출전한다. 삼계탕 한 그릇에 추가한 밥 한 공기까지 비운 허준은 “계룡산에서 좋은 기운 좀 받아와야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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