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감독, 정처 없이… 훌훌 날아가는 ‘황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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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사령탑 8년, 포항 떠나는 황선홍 감독

황새가 어떻게 생긴지 모르는 사람도 ‘황새’ 황선홍 포항 감독(47·사진)은 안다. 황새는 천연기념물 199호로 지정된 귀한 새다. 황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다.

건국대 2학년이었던 1988년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그는 부산 감독을 거쳐 2011년 포항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가 이끈 포항은 2012년 축구협회(FA)컵 우승에 이어 2013년 K리그 최초로 ‘더블’(정규리그와 FA컵 우승)을 달성했다. 그런데 황 감독이 갑자기 재충전을 선언했다. 짐을 싸고 있는 그를 만나 성적도 좋은데 왜 떠나는지 물었다.

“2013년 ‘더블’에 성공한 뒤부터 포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주할까 봐 두려웠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나도 팀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포항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줄 좋은 지도자가 오기를 바란다.”

황 감독은 해외 리그 지도자도, 해외 연수도 아직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8년 동안 감독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인생을 뒤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동안 못 챙긴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일단 쉴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차분하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황새는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한다. 황 감독도 웬만해선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화도 잘 내지 않는다. 스트라이커로서의 모든 자질을 갖추고도 승부사로서의 근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이유다.

“내 약점이다. 정치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권모술수, 교활함 같은 게 나는 싫다. 정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당당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참는다. 아마 감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황 감독은 그러나 스트라이커로서 독기가 부족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 득점 기회를 못 살린 뒤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길을 가다 대놓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다. 누가 그러더라.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같으면 더는 축구를 못했을 만큼 다쳤을 것이라고…. 한 장면만으로 이전까지 열심히 쌓아온 게 날아가고 낙인찍히는 게 억울했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때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회하고 은퇴할 것이라고. 그게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나를 월드컵 무대에 서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상대로 선제 결승골을 넣었다. ‘역적’에서 ‘영웅’이 된 그는 이듬해 K리그 전남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면서 지도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축구를 통해 국민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대표팀 감독으로서 다시 한 번 그 영광을 누리면 성공한 축구 인생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포항은 정규리그 2경기를 남겨 놓고 있다. 모두 이기면 황 감독은 포항에서만 K리그 100승을 채운다.

“내가 떠나는 것을 알지만 선수들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몸값 비싼 스타가 없어도 포항이 강팀인 것은 나와 선수들이 서로 믿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100승은 아니더라도 그들과 함께 1승이라도 더 하면 좋겠다.”

황 감독은 “대학 1학년 때 큰 키(183cm)에 비해 마른(당시 69kg) 나를 보고 선배들이 ‘황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했다. 성이 황 씨인 것도 그 이유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감독은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지금은 황새라는 별명이 좋다”며 웃었다.

한동안 국내에서 사라졌던 황새는 최근 다시 나타나 ‘길조’로 환영받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황 감독도 돌아올 것이다. 충전을 마친 ‘황새’가 서 있을 곳이 궁금하다.

포항=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황선홍#황새#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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