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넥센)가 미네소타의 지명을 받은 가운데 손아섭이 뒤를 이어 미국 시장 입찰에 돌입했다. 손아섭 다음 차례는 황재균(이상 롯데)이다. 김현수, 이대호, 오승환 등 국내외 자유계약선수(FA)들도 미국 구단들과 흥정을 시작했다.
이들이 모두 계약에 성공하면 류현진(LA 다저스)과 강정호(피츠버그)를 포함해 모두 8명의 KBO리그 출신 선수가 빅리그 유니폼을 입게 된다. 추신수(텍사스)가 찬조 출연하면 야구팀 하나를 꾸릴 수 있다.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변방이었던 한국 야구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이제 그 대가도 염두에 둬야 한다. 스타 유출은 국내 리그 흥행에 치명적인 악재다.
박찬호가 빅리그를 호령하던 시절 국내 프로야구는 한없이 위축됐다. 1995년 540만 명까지 늘어났던 프로야구 관중은 1996년 박찬호의 급부상과 함께 440만 명으로 100만 명이나 줄었다. 이듬해 1997년에는 390만 명으로 줄었고, 1998년에는 외환 위기와 맞물려 260만 명까지 추락했다. 암흑기는 2004년까지 계속됐다.
박찬호가 미국에서 막 뜰 때만 해도 국내 야구 관계자들은 낙관했다. “박찬호 덕에 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국내 프로야구에도 온기가 돌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는 커피와 설탕 같은 ‘보완재’가 아니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대체재’ 관계였다. 돼지고기 소비(메이저리그 관심)가 늘면서 쇠고기 매출(국내 프로야구 관중)이 급락했다.
최근에도 류현진과 강정호의 해외 진출로 국내 흥행 성적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올해 경기 수가 대폭 늘면서 관중 수도 2012년에 이어 700만 명대를 회복했지만, 평균 관중(1만 222명)은 최근 5년간 꼴찌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위가 야구 선수였을 만큼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던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치로, 마쓰자카, 다루빗슈 등의 이탈로 2012년에는 관중이 2100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해 우승팀 니혼햄의 평균 관중이 2만5000명으로 전년보다 2000명가량 줄 정도였다. 프랜차이즈 스타 다루빗슈가 메이저리그 텍사스로 이적한 것이 큰 악재가 됐다.
그래도 일본은 반전에 성공했다. 2013년 증가세로 돌아선 관중은 올해 2400만 명으로 급등했다. 시속 162km의 강속구 투수 오타니 쇼헤이 등 국내 스타들의 등장이 해외파에 대한 관심을 대체했다. 또 빅리그를 벤치마킹해 지역 밀착형 마케팅을 표방한 퍼시픽리그마케팅(PLM)도 효과적이었다. 흥행 성적이 부진했던 지바 롯데의 경우 선수들의 팬 서비스 수준을 연봉에 반영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일본은 그럴 수 있는 밑천이 있다. 프로야구를 즐기는 인구가 3000만 명이 넘어설 만큼 팬층이 두껍고, 고교야구 팀이 4000개가 넘을 정도로 저변이 넓다. 불행히도 국내 프로야구는 여러모로 어렵다. 고교 야구팀이 50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유소년에 대한 투자와 지역 밀착형 마케팅 등 기초 체력부터 다시 키울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일본처럼 야구가 축제이자, 생활이고, 문화인 분위기도 조성해야 한다. 역사는 늘 도전과 응전이었다. 특급 스타들의 해외 진출로 프로야구가 다시 생존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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