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응답하라 2002’라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빼놓지 않을 장면이 하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과 폴란드의 조별리그 1차전이다. 황선홍은 선제골을 넣은 뒤 한국 벤치로 달려가 누군가와 격한 포옹을 해 뜨거운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박항서 수석코치였다. 이 골은 한국의 4강 진출을 향한 신호탄이 됐다. 13년이 흘렀어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27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프로축구 상무 사령탑인 박항서 감독(56)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그를 알아본 식당 종업원들이 반갑게 사인 요청을 했다. 166cm의 단신에 대머리인 그의 외모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남은 머리칼이 더 성성해지고 하얗게 돼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 군대 가면 철든다
최근 박 감독은 상무를 11개 팀이 속한 챌린지(2부 리그) 정상으로 이끌어 내년 시즌 클래식(1부 리그)에 복귀하게 됐다. 3년 전 부임한 그는 “군(軍) 팀이라 선수들이 21개월 복무기간을 마치면 떠나게 돼 전력 유지에 어려움이 많다. 개성이 강한 선수들에게 소속감과 목표 의식, 응집력을 주문해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육군 팀에서 뛰었던 그는 군대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다. “군에 있는 동안 부족한 점을 채우고 보완할 수 있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이동국이나 이정협 이상협 등이 대표적이다.” 이정협은 ‘군데렐라(군인+신데렐라)’로 불리며 대표팀 기대주로 성장했다. 왼발의 달인이던 이상협은 오른발 슈팅까지 연마한 덕분에 전천후 공격수로 거듭났다.
박 감독은 군 복무 시절 자기 계발과 취미 생활도 할 것을 강조한다. “운동만 한 선수들이 여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다 보니 음주 도박 같은 탈선의 유혹에 빠진다. 한자를 익히거나 기타 등 악기를 배우는 것도 좋다. 잘 놀 줄 알아야 잘 뛴다.”
○ 히딩크가 보여준 ‘프로 지도자’
박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69)을 거론할 때 꼬박꼬박 ‘님’ 자를 붙였다. “감독님이 처음 한국에 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해서 뭘 믿고 저러나 싶었다. 월드컵 본선을 50일 남기고는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50%인데 매일 1%씩 끌어올려 100%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결국 해내지 않았나.”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성공 비결로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인력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며 임기응변과 반전에 강한 것을 꼽았다. 히딩크가 무한 경쟁 시스템을 활용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 “감독님은 같은 포지션의 여러 선수를 골고루 기용했다. 주전과 후보의 구분이 없다 보니 선수들이 늘 긴장하고 준비했다. 그래서 23명 전원이 고른 기량을 가졌다.”
박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히딩크 감독의 가르침이 큰 밑거름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감독님이 그러더라. 나중에 네가 성인팀 감독이 되면 절대로 선수 만들어 쓸 생각하지 말고 갖고 있는 실력을 극대화해라. 시간은 너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철저한 프로였다.” 영어에 얽힌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다. 그는 “감독님이 영어 못 한다고 짜증낸 적도 있다. 나 역시 스트레스가 심해 1주일에 세 번 과외도 받았는데 안 되더라. 내 아들은 달랐으면 해서 미국 유학 보냈다. 선수들에게도 영어 단어만이라도 외우라고 한다”며 웃었다.
○ 다시 뛰는 ‘2002’ 멤버
경신고에 입학해 뒤늦게 축구를 시작한 박 감독은 럭키금성 등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다. 출발은 늦었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박 감독은 “내 평생 2002년 월드컵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대표팀 코치, 선수들과 ‘팀 2002’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난다”고 말했다. 마침 12월 2, 3일 경기 안성시에서 행사를 연다. “안성시와 풋살 돔구장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내년 1월 준공한다. 유소년 축구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란다.”
2002년을 빛낸 홍명보 황선홍 최진철 최용수 등은 감독이 됐고, 이영표와 박지성 안정환 등도 축구판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 감독은 “사석에서 황 감독, 홍 감독이라고 불렀더니 그냥 편하게 선홍아, 명보야로 부르라고 하더라. 다들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국내 리그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선수 선발이나 연봉 등의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감독님 빼면 내가 최고령인데 어깨가 무겁다. 축구로 큰 사랑 받았으니 더욱 힘을 보태겠다”라고 다짐했다. 한국 스포츠 역사를 다시 쓴 2002년 ‘4강 신화’는 진행형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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