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팀은 98억 원을 들여 준척 둘을 붙잡았고, 다른 팀은 84억 원을 최대어 한 명에게 다걸기(올인)했습니다. ‘롯데 시네마’와 ‘한화 극장’ 중에서 문을 닫는 건 어느 쪽일까요?
프로야구 팬들은 구원 투수 때문에 ‘롤러코스터 경기’가 나오면 극장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원래 일본 언론에서 쓰기 시작한 표현으로 문자 그대로 영화처럼 극적인 승부를 벌였다는 의미입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는 한화와 롯데가 가장 ‘극장 야구’로 유명했습니다. 결과는 두 팀에 나쁜 쪽이었습니다. 한화는 8회 이후 역전패가 9번으로 10개 팀 중 제일 많았고, 롯데가 7번으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열리자 두 팀에서 불펜 투수 확보에 나선 이유죠.
먼저 롯데가 38억 원을 들여 윤길현(32)을 영입한 뒤 다시 손승락(33)에게 60억 원을 질렀습니다. 한화는 이번 FA 시장 최대어로 꼽혔던 정우람(30)을 영입하는 데 84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물론 심수창(34)도 13억 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세 선수하고는 ‘레벨’이 다른 게 사실입니다.
윤길현, 정우람과 함께 올 시즌 SK에 몸담았던 조원우 롯데 신임 감독은 “시장가는 차이가 나더라도 두 투수를 모두 봐온 내 입장에서는 (윤)길현이도 (정)우람이에게 뒤질 것 없는 좋은 투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평가는 조 감독의 믿음 또는 바람일까요, 아니면 사실에 가까울까요.
구원 투수를 평가하는 잣대 중 하나는 위기에 마운드에 올랐을 때 첫 타자를 어떻게 요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딱 한 타자를 잡아달라고 감독이 필승조를 마운드에 올리는 일도 잦습니다. 올 시즌 롯데와 한화가 유독 극장 경기가 많았던 건 이 싸움에서 지고 들어간 탓이 큽니다(표 참조).
정우람은 올 시즌 이닝 중간에 마운드에 올랐을 때 첫 타자를 타율 0.179, OPS(출루율+장타력) 0.487로 막아냈습니다. 삼진으로 돌려세운 건 전체의 32.6%인 14번. 반면 같은 상황에서 윤길현을 상대한 타자들 기록은 타율 0.333, OPS 1.167이었습니다. 넥센 박병호(29)의 올 시즌 OPS가 1.150이니 윤길현은 위기에서 상대 타자를 박병호 이상 가는 특급 선수로 만들었던 셈입니다. 시즌 전체로 보면 피안타율이 0.244밖에 되지 않는 윤길현이지만 위기에서는 약했던 겁니다.
롯데 팬들에겐 안타까운 얘기지만 손승락도 정우람보다는 윤길현에 가깝습니다. 올 시즌 손승락은 상대 타자를 OPS 0.741로 묶었는데 이닝 중간에 올라와 첫 타자를 상대할 때는 0.821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길현과 손승락을 상대한 타자들 기록을 더하면 타율 0.298, OPS 1.041이 나옵니다. 같은 상황에서 올 시즌 롯데 불펜 투수들 상대 기록(1.085)과 비교해도 불펜이 확 업그레이드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입니다.
게다가 조 감독이 ‘초보 감독’이라는 것도 롯데 불펜에서 쉽게 물음표를 지우지 못하게 만듭니다. 시즌 전체로 놓고 봐도 롯데 불펜의 상대 OPS가 0.843으로 나빴던 건 사실. 그래도 첫 타자를 상대할 때 저렇게 올라간다는 건 역시 초보였던 이종운 전 감독의 투수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연 조 감독은 두 투수를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기용할까요? 다음 시즌 롯데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