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현재 계약 기준으로 내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몸값이 가장 높은 투수 두 명은 모두 구원 투수입니다. KIA 윤석민(29)이 22억5000만 원을 받고 한화 정우람(30)이 21억 원을 받습니다. 윤석민은 내년에 선발로 뛰어도 이상하지 않은 투수지만 정우람은 2004년 데뷔 이후 통산 600경기 동안 선발 등판이 한 번도 없는 순도 100% 구원 투수입니다.
일본프로야구(NPB)만 해도 당연히 선발 투수의 몸값이 더 비쌉니다. 올해 NPB 선발 투수 몸값 1위는 5억 엔(약 48억370만 원)을 받은 스기우치 도시야(35·요미우리). 구원 1위는 같은 팀의 왼손 투수 야마구치 데쓰야(32)로 3억2000만 엔(약 30억7437만 원)을 받았습니다. 메이저리그(MLB)는 구원 투수의 몸값이 선발 투수 몸값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LA 다저스에서 애리조나로 팀을 옮긴 잭 그링키(32)가 선발 투수 최고인 3441만666달러(약 405억9446만 원)를 연봉으로 받을 때 구원 투수 중에서는 데이비드 로버트슨(30·시카고 화이트삭스)이 1150만 달러(약 135억6425만 원)로 최고입니다.
원래 한국도 구원 투수 몸값이 이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2011년 정대현(37)이 롯데와 계약할 때 조건은 4년간 총액 36억 원이었습니다. 당시에도 “구원 투수로서는 이례적인 대형 계약”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정우람이 같은 기간 84억 원을 받기로 했으니 4년 사이에 구원 투수 몸값이 133% 뛰었습니다. 반면 타자는 심정수(40)가 2005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50억 원을 받은 뒤 박석민(30)이 올해 NC에서 96억 원을 받았으니 10년 동안 92%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이렇게 구원 투수 몸값이 올라간 제일 큰 이유는 감독들이 ‘불펜 야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구원 투수들은 전체 투구 이닝의 42.0%를 소화했습니다. 반면 이 비율이 MLB에서는 35.0%, NPB에서는 33.6%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경기 초반에 선발 투수가 좀 흔들린다 싶으면 바로 불펜을 기용하는 일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불펜 쏠림 현상이 생긴 건 당연히 젊은 선발 투수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1∼2015년 △선발로 10경기 이상 등판했고 △평균자책점이 리그 평균 이하이면서 △해당 연도에 25세 이하였던 투수는 16명뿐입니다. 그리고 이 조건을 2년 이상 연속으로 충족한 투수는 류현진(28·현 LA 다저스), 이재학(25·NC), 임정우(24·LG)뿐입니다. 그나마 임정우는 지난해 10경기, 올해 11경기에 선발로 나섰을 뿐입니다.
선발 투수 없이 야구를 할 수 없으니 한국 팀들은 외국인 투수들에게 선발 투수를 맡깁니다. 거꾸로 외국인 투수를 데려다 구원 투수로 쓰기에는 영 부담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구원 투수는 누구나 기복이 있게 마련인데 부진한 외국인 투수를 기다려 주기는 힘드니까요. 그래서 한국 프로야구는 투수를 키우지 못하는 탓에 오히려 구원 투수가 더 대접받는 특이한 리그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원 투수는 승리를 지킬 수는 있지만 승리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잡을 생각보다 놓칠까 봐 걱정부터 하는 게 지금 한국 프로야구 시장 상황입니다. 이걸 그냥 한국적이라고 부르면 되는 걸까요? 아니면 비정상적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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