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이 ‘한국의 양키스’라고 불린 건 2004년 즈음이다. 삼성은 당시 심정수, 박진만 등 자유계약(FA) 선수 3명을 잡기 위해 166억6000만 원이나 지출했다. 그해 삼성 선수단 연봉 총액(39억 원)의 4배가 넘는 거액이었다. 돈으로 스타급 선수를 싹쓸이해 ‘악의 제국’으로 불렸던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닮았던 것이다. 삼성은 당시 “최고의 팬 서비스는 팀 성적”이라는 논리로 양키스를 벤치마킹했다.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지만 삼성의 전략은 이후 ‘시스템 야구’로 진화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삼성은 통산 8번이나 정상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4년 연속 통합 우승까지 차지했다. ‘한국의 양키스’라는 수식어는 어느새 ‘리그를 대표하는 팀’이라는 긍정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월드시리즈 우승 27번에, 5년 연속 우승 기록을 보유한 리그 간판스타 양키스를 정교하게 복제한 것이다.
그런 삼성이 이제는 또 다른 차원에서 양키스를 바라보고 있다. 삼성은 조만간 제일기획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축구, 배구, 농구에 이어 야구단까지 총괄하게 된 제일기획은 스포츠단도 수익을 내야 한다는 논리다. 5년 뒤에는 흑자로 전환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30여 년간 ‘1등’만 추구했던 야구단이 ‘돈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해야 하는 것이다. 진짜 양키스처럼.
양키스의 지난해 매출은 5억5000만 달러(약 6480억 원)였다. 관중 수입과 중계권료가 매출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스폰서십과 팀 로고 수입 등이 나머지를 채웠다. 거의 매년 초특급 스타를 영입하고도 매출의 10% 정도는 이익을 냈다.
삼성의 지난해 매출은 510억 원 수준. 그런데 양키스와 달리 광고 매출이 280억 원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광고 매출은 사실상 그룹 지원금을 말한다. 지원을 받고도 손실이 170억 원이나 됐다. 양키스처럼 흑자 구단이 되려면 지출을 줄이면서 수백억 원을 나가서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규모도 작고 토양도 척박한 국내 시장을 보면 막막한 얘기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9개 그룹을 빼면 야구단의 파트너가 될 만한 큰 기업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넥센이 저인망식으로 영업해 연간 100개 정도의 스폰서를 유치하는데 그래도 매년 50억 원 정도의 적자를 낸다. 경기당 평균 관중도 1만1000명 수준으로 최근 5년간 증가율은 0.28%로 정체 상태다.
메이저리그 글로벌 이벤트 등을 총괄하는 MLBI 크리스 박 수석부사장은 당장의 수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야구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9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윈터미팅에서 “빅리그는 최소 5년 뒤를 내다보고 인구(인종) 분포와 출산율까지 따져 가며 마케팅을 전개했다”며 “그 결과 전체 매출이 78억 달러(약 9조2140억 원)로 2001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단국대 전용배 교수는 수익 다변화 측면에서 현행 퓨처스리그(2군)를 독립시켜 중소도시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인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 삼성은 아무도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가야 하고 다른 구단들은 그런 삼성을 주시하고 있다. 추격자로서 성공 방정식을 써 왔던 삼성이 선도자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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