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동거리만 보면 편차가 좀 있습니다. 내년에 가장 많이 움직여야 하는 KIA는 가장 적게 이동하는 SK보다 2924km를 더 이동해야 합니다(표 참조). KBO 운영팀에서 작성하는 경기 일정은 해마다 이 정도 격차가 납니다.
이 차이를 정말 줄일 수는 없는지 지난 주말에 제가 한번 일정을 직접 짜봤습니다. 제가 쓴 도구는 연필과 공책 한 권. 원래는 ‘마르코프 체인 몬테카를로(MCMC) 시뮬레이션’이라는 통계 기법을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프로 스포츠 리그 경기 일정을 짤 때 흔히 쓰는 기법입니다. 그러다 생각을 바꾼 건 스티븐슨 부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남편 홀리 씨와 아내 헨리 씨는 1981년부터 2004년까지 24년 동안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 메이저리그 스케줄을 짰습니다. 당시 IBM 같은 대기업에서 각종 통계 기법을 자랑하며 이 사업을 따내려 했지만 스티븐슨 부부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스포츠스케줄링그룹(SSG)이라는 곳에서 컴퓨터로 그 일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SSG 창립 멤버인 마이클 트릭 미국 카네기멜런대 테퍼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티븐슨 부부는 다른 그 어떤 사람도 볼 수 없던 패턴을 볼 줄 아는 진정한 스케줄 전문가였다”며 “여전히 이 두 사람보다 이 분야에 전문가는 없다. 다만 컴퓨터 기술이 사람 머리를 앞섰을 뿐”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부부가 일정을 짜는 데는 보통 6개월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말에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덤빈 건 처음부터 무모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이 서로 만나는 일정을 만들어 내는 건 컴퓨터로 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 팀이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안방경기를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날짜가 있기 때문에 일정을 조율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컴퓨터가 일정을 짜게 되면서 “일정이 너무 기계적”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를테면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마지막 안방경기 일정이 너무 빨리 잡혀 2013시즌이 다 끝나기 전에 안방 팬들에게 은퇴 인사를 건네야 했습니다.
KBO에 한 가지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해마다 여름방학 즈음에 이듬해 일정 공모전을 열면 어떨까요? 그러면 관련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최적화’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프로야구도 어린이날 안방 팀이 해마다 정해져 있는 걸 비롯해 제약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런 사정을 두루 감안한 최적의 일정을 받아 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날 꼭 응원 팀이 안방경기를 해야 하는 이유’도 팬들에게 신청을 받는 겁니다. 10개 팀 중 5개 팀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실에서 이동거리 편차를 줄이는 데만 골몰하면 역시 일정이 기계적이라는 불만이 나올 겁니다. 여기에 ‘스토리 마케팅’을 더하면 3000km에 가까운 작지 않은 격차를 팬들과 선수 모두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사과 열매 속에 뜬 씨앗은 몇 개인지 알아도 씨앗 속에 든 사과는 몇 개인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압니까. 일정을 이렇게 팬들이 정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드라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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