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훈 코치 “가벼운 배트 치면 창피한 줄 알았다” 이만수 전 감독 “배트 반발력 떨어져 홈런수 적어”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인 그 시절 프로야구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팬들에게는 추억의 스타들과 그들의 땀으로 얼룩진 올드 유니폼으로 많이 기억된다. 어린이회원으로 가입한 날에는 야구 모자와 점퍼, 책받침을 한 아름 품고 동네가 떠나갈 듯 환호성을 외쳤다.
그렇다면 그 시절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들은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야구공은 그 때나 지금이나 108개의 붉은 매듭을 지니고 있다. 지금과 비교하면 쇠가죽의 질이 많이 떨어지지만, 글러브도 큰 차이는 없다. 수많은 왕년의 스타들이 공통적으로 추억하는 것 중 하나는 지독히 무거운 배트다.
1990년대 홈런왕 장종훈 롯데 코치는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40홈런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40홈런, 50홈런이 어느덧 흔해진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해도 20개대 중반이면 홈런왕에 오를 수 있었다. 1987년 빙그레 유니폼을 입고 1군에 데뷔한 장 코치는 1988년 처음으로 두 자릿수(12개) 홈런을 날리며 주목을 받았다. 1989년 18개, 1990년 28개, 1991년 35개, 1992년 41개로 홈런수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장 코치는 “지금은 아무리 거포라고 해도 1kg짜리 배트를 쓰는 타자가 없다. 그러나 그 때는 거의 모든 타자가 1kg보다 무거운 배트를 썼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가벼운 배트는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요즘 배트는 잡아만 봐도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반발력도 좋고, 무게중심도 굉장히 좋다. 가볍고, 밸런스 좋은 방망이를 그 때 알았더라면 홈런도 더 치고, 부상도 많이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1980년대 홈런왕인 이만수 전 SK 감독은 “프로 초창기에는 배트가 무겁고 반발력도 떨어졌다.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뜬공보다는 땅볼을 치는 스윙이 권장됐던 시절이다. 홈런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롯데 4번타자였던 ‘자갈치’ 김민호 전 코치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미국 ‘루이빌 슬러거’ 배트를 수입해 색칠을 다시 해 국내산 배트로 둔갑시켜 사용했다. 규정상 부정배트는 절대 아니었다. 혼자 다른 배트를 쓰는 게 보기에 좀 그럴 수 있고, 비밀병기처럼 쓰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그랬다. 국내산보다 훨씬 가볍고 잘 맞았다. 타구의 질 자체가 달랐다”고 추억했다. 배트를 아래로 내렸다 올리며 타이밍을 잡았던 독특한 그의 타격자세 뒤에는 당시만 해도 남들은 상상도 못했던 영리함이 감춰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