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중략) 금복은 늪지대에 벽돌공장을 지음으로써 무모하고 어리석은 여자가 되었다.’(천명관 ‘고래’)
제가 이 소설 구절을 읽은 건 일본 삿포로에서 대만 타이베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습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대표팀과 함께 가는 비행기였죠. 대표팀은 대회 개막전에서 일본에 완패해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선수들은 어떤 행동에 의해 패자가 됐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고자질의 법칙이었습니다.
사실은 책을 읽는 선수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선배 기자들에게 ‘현역 때 비행기에서 책을 열심히 읽던 선수가 나중에 좋은 지도자가 되더라’라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입니다. 개막전에서 한국 타선을 침묵하게 만든 오타니 쇼헤이(21·니혼햄)가 쓴 ‘목표 달성 용지’도 떠올랐습니다. 오타니는 재미있게도 운(運) 항목에 ‘책 읽기’를 적어뒀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었던 걸까요.
오타니는 “운동이 끝나고 목욕탕에 들어가 읽는 책이 제일 많다. 책이 습기를 먹는 건 신경 쓰지 않은 지 오래됐다”며 “(인도 크리켓 선수의 메이저리그 도전기를 다룬 소설) ‘밀리언 달러 암(Million Dollar Arm)’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구리야마 히데키 니혼햄 감독이 펴낸 ‘미테쓰자이(未徹在·아직 깨치지 못했다)’를 읽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건 처세의 법칙이었을 겁니다.
196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한 짐 보턴(76)이 쓴 책 ‘볼 포(Ball Four)’에도 야구 선수가 책을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구절이 나옵니다.
“너 책 참 많이 읽는구나.” 비행기에서 (팀 동료) 대럴 브랜던이 내 옆에 앉아 물었다. “응.” “책이 너를 똑똑하게 만들어 주니?” “꼭 그렇진 않아. 그 대신 내가 똑똑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어주지.”
보턴 역시 처세의 법칙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한국 대표팀에도 ‘처세의 달인’이 있었을까요? 적어도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제가 관찰하고 있는 동안, 종이 책을 읽고 있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기 바빴죠. 그게 잘못은 절대 아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건 방앗간의 법칙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이게 마련이니까요.
사실 ‘목표 달성 용지’는 오타니가 나온 일본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의 사사키 히로시 감독(39) 작품입니다. 사사키 감독은 모든 부원에게 이 용지를 쓰도록 했지만 이렇게 커다란 목표를 실제로 달성한 건 오타니뿐입니다. 꿈이나 목표가 아니라 행동에 의해 오타니는 오타니가 됐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새해를 맞아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나이도 급하게 먹으면 체합니다. 꼭꼭 씹어 드세요. 나이 먹다 체한 행동만큼 우리가 우습게 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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