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22·하이트진로)가 새로운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2016년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새 출발을 시작하는 전인지는 새로운 1년 그리고 앞으로의 골프인생에 대해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다.
2월 코츠골프챔피언십 LPGA 공식 데뷔 상금랭킹 10위 안에 드는 것이 1차 목표
부모 도움·헌신 없었다면 나는 없었을 것 이상형은 아버지·박원 원장 반반 닮았으면
● LPGA ‘톱10’이면 만족
2015년은 전인지의 해였다. 국내에서만 5승을 거두며 1인자로 등극했고,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과 일본(JLPGA)투어에서도 2번이나 메이저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에 ‘전인지’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영광의 시간은 지나갔다. 2월3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코츠골프챔피언십에서 공식 데뷔전을 치를 예정인 전인지에겐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전인지는 기대와 설렘을 모두 갖고 있었다.
“외국 대회에 자주 출전해봤고 그러면서 코스나 낯선 환경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다만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없게 돼 외로움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게 가장 큰 걱정이다.”
2016년을 맞아 전인지도 몇 가지 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거창하지는 않다.
“새해는 늘 훈련 중에 맞이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새해가 되면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큰 목표는 아니다. 대개는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목표로 세운다. 더 중요한 건 훈련을 어떻게 하느냐다. 두 달 정도 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한 시즌을 보낼 에너지와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지친다.”
팬들은 기대가 크다. LPGA 신인상과 8월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까지 모두 손에 쥐기를 바란다. 전인지는 그보다 소박한 목표를 정했다.
“2015년 너무 좋은 성적을 냈다. 그래서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몇 승을 하겠다는 그런 목표보다 상금랭킹 10위 안에 드는 것이 1차 목표다. 그 정도면 내 스스로 칭찬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은 성적에 대한 압박보다는 즐기면서 투어생활을 하고 싶은 게 전인지의 계획이다.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 역시 그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늘 반복해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즐긴다고 해서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현명하게 잘 이겨낼 수 있는 준비와 믿음이 있어야 힘든 순간이 와도 잘 이겨낼 수 있다.”
● 가장 큰 일탈은 훈련하다 8시간 연락두절
지금껏 전인지가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오히려 버디를 하고 나서 활짝 웃으면 같이 따라 웃게 만든다. 늘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기에 ‘순둥이’처럼 보인다. 그런 전인지에게도 일탈은 일었다. 전인지는 “부모님의 속을 썩인 적이 있었다”며 2년 전의 얘기를 들려줬다.
“한번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 적이 있다.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먹고 연습장을 나와서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핸드폰도 보지 않으면서 걸었기에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부모님으로부터 수십 통의 전화가 왔었다. 아마 9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갔으니 8시간 넘게 방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무슨 일로 그랬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전인지가 일탈이라고 말하는 사건은 하나 있다. 고교시절 상비군 합숙 때의 일이다. 전인지는 “감기에 심하게 걸려 병원에 가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사 먹은 일이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 상황이라서 복귀해서 아무것도 안 먹은 것처럼 행복했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별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전인지에겐 큰 사건(?)으로 남아 있다. 스물두 살이면 남자친구도 만날 나이고 친구들과 여행을 즐기며 추억을 쌓을 나이다. 그러나 전인지에겐 남의 얘기다.
“남자친구는 한번도 사귀어 본적이 없다. 크리스마스 때도 친구들과 만났다. 슬프다.”
주위에선 남자친구를 만나보라는 권유도 많다. 하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자연스레 이상형 얘기까지 나왔다. 전인지는 “너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이상형은 없다”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굳이 손꼽으라면 아버지와 원장님(스윙코치인 박원 원장)을 반반씩 닮았으면 좋겠다”고 억지로 이상형을 만들어냈다.
● 성공 뒤엔 가족과 긍정
전인지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족과 긍정의 힘이다.
지난 12월8일. 전인지는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느 분야에서든 큰 성공을 얻기 위해선 가족의 희생과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부모님의 도움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런 일들을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전인지는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골프를 배웠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돈을 덜 들이면서 골프를 배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때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레슨비를 내기조차 힘든 시절도 있었다. 다행히 힘든 환경 속에서도 그는 밝게 성장했다. 코스에서 마주하는 전인지는 누구보다 표정이 밝다. 찡그린 얼굴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늘 환한 미소를 하고 있다. 심지어 경기를 망치고도 웃는다.
“나도 사람이라 짜증나는 일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길게 끌고 가지 않고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것뿐이다.”
긍정의 힘은 전인지를 계속해서 성장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짜증을 낸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참는 것뿐이다. 결과적이지만 샷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짜증을 내봐야 날아간 공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긍정의 힘을 믿는 전인지는 LPGA라는 새로운 무대로의 도전을 앞두고도 같은 생각이었다.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을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다. 두려움은 없다.”
10년 뒤 전인지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여전히 코스 위에서 잔디를 밟고 있을 것 같다”면서 “지금까지의 성적을 놓고 보면 큰 틀에서 목표를 초과했다. 지금은 약간 오버페이스지만 다음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조금씩 내 인생의 그래프를 완성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전인지는 누구?
▲1994년 8월10일생 ▲175cm, A형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재학 중 ▲2012년 KLPGA 입회 ▲2013년 KLPGA 한국여자오픈 우승 ▲2014년 KLPGA 3승(에쓰오일 인비테이셔널, KDB대우증권클래식, 포스코챔피언십) ▲2015년 KLPGA 5승(삼천리투게더오픈, 두산매치플레이, 에쓰오일 인비테이셔널, 하이트진로챔피언십, KB금융스타챔피언십) ▲2015년 LPGA US여자오픈 우승 ▲2015년 JLPGA 일본여자오픈, 살롱파스 월드레이디스 우승 ▲2015년 KLPGA 상금, 다승, 최저타수 1위, 대상, 베스트 플레이어 트로피(5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