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올리비에르와 벤지’를 보고 축구를 시작했다. 학교에 가면 모든 친구들의 화제였다. 이 애니메이션이 바로 일본에서 건너 온 ‘캡틴 쓰바사’다.” 한때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통했던 스페인 출신의 페르난도 토레스(32·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2012년 일본을 찾았을 때 한 얘기다. 방문한 나라를 띄워주기 위한 의례적인 말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그는 유럽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축구 선수를 꿈꾸는 모든 소년들에게 캡틴 쓰바사는 성경과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수였던 티에리 앙리(39·은퇴)도 “캡틴 쓰바사를 보며 꿈을 키웠고 그 덕분에 선수가 됐다”고 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란체스코 토티(40·AS 로마)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된 지네딘 지단(44)도 축구를 시작한 계기가 이 애니메이션이었다.
▷‘캡틴 쓰바사’는 1981년부터 일본의 한 만화잡지에 연재된 작품이다. 아기 때부터 축구공만 보면 놓지 않는 주인공 쓰바사(翼·つばさ·날개)가 라이벌들을 만나면서 성장해 국가대표가 되고 해외리그로 진출해 활약하는 모습을 담았다. 단행본 시리즈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세계 각국에 수출됐다. 일본에서 “J리그를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은 ‘캡틴 쓰바사’의 인기는 유럽에서도 대단했다. 쓰바사가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내용이 나오자 FC 바르셀로나는 ‘캡틴 쓰바사’의 작가를 초대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어 줬다. FC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가 “왜 우리가 아닌 바르셀로나를 선택했느냐”는 공식 유감을 발표했을 정도였다.
▷1990년대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함께 만들었다는 ‘슬램덩크’, 프로배구의 본고장이었던 이탈리아에 배구 열풍을 다시 일으켰던 ‘아타쿠 넘버원(アタックNo.1·Attack No.1)’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 스포츠에 끼친 영향은 크다. 주인공의 운동 실력이 초능력자라 할 만해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쓰바사를 통해 열정, 스포츠맨십, 우정의 중요성을 배웠다”는 토레스의 말은 이런 작품들이 단순한 만화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도 기념비적인 축구 만화가 있었다. 쓰바사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9년부터 어린이잡지에 연재됐던 ‘울지 않는 소년’이 그 작품이다. A매치를 할 때마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한국 축구가 오래전부터 축구계의 혁신을 주장하던 ‘독고룡’을 뒤늦게 찾았지만 그는 세상을 떠나고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키운 아들 ‘독고탁’이 축구를 통해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누렸지만 ‘캡틴 쓰바사’처럼 세계로 수출되기에는 경제·문화 등 대외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축구, 야구, 복싱 등 여러 종목에서 주인공 독고탁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스포츠 붐 조성에도 기여한 이상무 화백이 최근 세상을 떠났다. 그가 그릴 독고탁은 이제 없지만 “이 만화(웹툰)를 보고 축구를 시작했다”는 작품이 우리에게서도 하나쯤은 나오면 좋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