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10원 더…” 김광현-양현종 ‘쩐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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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내가 먼저라니까요.”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당대 최고 투수였던 선동열이 득남했다. 이튿날 목을 빼고 출산을 기다리던 평생의 라이벌 최동원도 아들을 얻었다. 선동열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온갖 기록을 따라잡느라 최동원 선배 뒷북만 쳤는데, 아들만큼은 내가 앞섰다”며 껄껄 웃었다.

그냥 웃자고 한 얘기였다지만, 두 스타의 라이벌 의식은 그만큼 대단했다. 그러니 자존심의 상징인 연봉만큼은 두 선수 모두에게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문제였다.

1986년은 선동열의 해였다. 0.99라는 기적적인 평균 자책점, 24승, 그리고 탈삼진 214개로 한국 최초의 투수 3관왕을 달성했다. 그해 말 연봉 협상 때 선동열이 내세운 조건은 단 하나였다. “국내 최고 투수보다 무조건 10원만 더 달라.” 최고 투수는 라이벌 최동원을 말한 것이었고, 당시 최동원의 연봉은 8000만 원이었다.

애초 4500만 원을 제시했던 해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동열은 어떻게든 최동원을 넘어서길 원했다. 연봉 협상은 이듬해 3월까지도 타결되지 않았고, 해태가 결국 극약 처방을 내렸다. “선동열을 임의탈퇴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에이스를 버리겠다는 선언이었다. ‘10원 더’를 외쳤던 선동열이 결국 백기를 들었고, 4월 초에야 6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그 후 30년이 흐른 2016년 프로야구 스토브리그 풍속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광현(SK)과 양현종(KIA)이 팀 내 유일한 연봉 미계약자로 남아 있는 것도 라이벌 의식 때문이다. 둘은 선동열과 최동원만큼 경쟁적이다.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왼손 강속구 투수로, 2014시즌 뒤 나란히 미국 진출을 타진했을 만큼 실력도 국내 최고를 다툰다. 결정적으로 1988년생 동갑내기다.

두 선수는 김현수(볼티모어)가 보유한 비자유계약선수 연봉 최고액(7억5000만 원)보다 많이 받을 걸로 예상된다. 구단도 충분히 주겠다는 태도다. 그런데도 금액을 확정짓지 못하는 건 라이벌의 존재 때문이다. SK 측 관계자는 “김광현의 연봉을 먼저 발표하면 양현종이 거기에 조금 더 얹어서 책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먼저 발표하는 쪽이 지는 게임이라 신경전이 길어지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봉 협상을 마친 선동열은 그해(1987년) 최동원과 역사적인 명승부를 펼쳤다. 5월 16일 맞대결에서 무려 연장 15회까지 혈투를 벌였고, 결과는 2 대 2 무승부로 끝났다. 당시 15이닝 동안 던진 공이 최동원은 209개, 선동열은 232개나 됐다. 팽팽한 경쟁의식이 빚어낸 프로야구 최고의 명승부는 2011년 영화 ‘퍼펙트게임’으로 재조명됐다.

이것이 라이벌이다. 김광현과 양현종의 스토브리그 ‘치킨게임’도 이처럼 그라운드로 이어져야 팬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특히나 2016년 프로야구는 박병호, 김현수 등 특급 타자들의 미국 진출로 위기를 앞두고 있다. 1990년대 파업으로 위축됐던 메이저리그를 살린 건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왕 라이벌 구도였다. 막판 스토브리그를 달구고 있는 김광현과 양현종의 ‘쩐의 전쟁’에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
#김광현#양현종#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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