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도로공사·현대캐피탈의 ‘현미경배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월 14일 05시 45분


현대캐피탈은 12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한항공과의 원정경기에서 철저한 분석과 예측을 기반으로 세트스코어 3-2 승리를 일궜다. 올 시즌 대한항공에 3패를 당한 끝에 거둔 첫 승이었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대한항공을 꺾은 직후 한데 모여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은 12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한항공과의 원정경기에서 철저한 분석과 예측을 기반으로 세트스코어 3-2 승리를 일궜다. 올 시즌 대한항공에 3패를 당한 끝에 거둔 첫 승이었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대한항공을 꺾은 직후 한데 모여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양효진 봉쇄 작전’ ‘목적타 서브 작전’
데이터에 근거한 맞춤 전략으로 승리
철저한 예측·분석시스템의 성공사례


4라운드 중반이다. 이미 상대와 3∼4차례씩 맞붙으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상대의 플레이 패턴과 선수들의 특성은 철저히 해부된 상태다. 흔히 야구를 ‘인치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배구는 ‘인치와 눈치 예측의 싸움’이다. 전력분석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준비한 예측과 분석 시스템은 이럴 때 더욱 빛난다. 11일 여자부 선두 현대건설을 3-0으로 잡은 도로공사와 12일 남자부 2위 대한항공을 3-2로 누른 현대캐피탈은 예측과 분석의 성공 사례를 잘 보여줬다.

‘상대 주공격수를 막지 않고는 승산이 없다’고 믿은 도로공사

도로공사는 현대건설과의 4라운드 대결을 앞두고 6일간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이때 박종익 감독은 수비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고 시뮬레이션 훈련을 거듭했다. 앞선 3차례 맞대결을 통해 박 감독이 판단한 승리의 키는 현대건설 양효진에 대한 마크였다. 올 시즌 양효진이 전위에 나서면 50% 이상의 공격점유율로 다득점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현재 한국 최고의 센터를 그냥 내버려두고선 승리하기가 어렵다고 봤다. 양효진은 3라운드까지 도로공사와의 맞대결에서 16득점(성공률 44.44%·점유율 16.67%)→16득점(성공률 52.68%·점유율 19.79%)→32득점(성공률 58.7%·점유율 25.41%)을 각각 기록했다.

다행히 도로공사에는 양효진이 껄끄러워하는 정대영이 있었다. 박 감독은 정대영에게 양효진을 전담하도록 했다. 정대영은 양효진이 중앙에서 펼치는 시간차 공격을 철저히 따라다녔다. 결국 양효진은 부담스러운 정대영을 피해 사이드로 이동해 공격했지만, 성공률이 평소보다 떨어졌다. 이날 6득점(성공률 46.15%·점유율 11.4%)은 양효진이 올 시즌 도로공사전에서 거둔 최악의 성적이었다.

시뮬레이션과 역할 분담 수비로 잡은 현대건설

양효진을 집중 수비하느라 노마크가 된 현대건설 윙공격수 에밀리와 황연주는 수비로 막아냈다. 간혹 1-1 블로킹에서 빈틈이 생기더라도 수비에서 잡아내기 위해 시뮬레이션 훈련을 거듭했다. 훈련기간 내내 도로공사 코치들은 황연주와 에밀리가 주로 공격했던 코스로 공을 때려줬다. 수비수들은 반복해서 이 공을 받아가며 적응력을 높였다. 이와 함께 상대 공격수에게 블로커가 1명 또는 2명이 따라붙을 때 어떤 코스를 열어주고, 어떤 코스는 수비로 막을 것인지 전위와 후위의 철저한 역할 분담도 훈련했다. 박종익 감독이 경기 내내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원투 수비시스템’이었다.

양효진에 대비한 것은 공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히 양효진을 피해서 공을 때렸다. 날개 공격수에게는 중앙의 양효진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스트레이트 공격을 요구했다. 만일 상대의 센터 블로커에게 차단당하면 10만원의 벌금을 내자는 약속도 했다. 선수들끼리의 약속은 잘 지켜졌다. 이날 양효진의 블로킹은 하나도 없었다.

● 대한항공 날개 꺾은 현대캐피탈의 목적타 서브

올 시즌 상대전적에서 3전패를 안겼던 대한항공과의 12일 4라운드 맞대결을 앞두고 현대캐피탈은 목적타 서브를 준비했다. 특정 선수를 겨냥하던 서브가 아니었다. 대한항공의 로테이션 위치 1번과 2번 사이의 공간으로 서브를 넣도록 주문했다. 최태웅 감독이 기대했던 것보다 서브의 강도는 떨어졌지만 결과는 좋았다.

최 감독이 그 코스를 집요하게 공격하도록 주문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3차례의 맞대결 결과, 대한항공의 승리 열쇠인 세터 한선수는 이 코스로 서브가 올 경우 가장 토스 성공률이 낮았다. 경기 후 최 감독은 “한선수의 기량이 워낙 좋아 토스를 평균치 이하로 떨어트리는 것이 목표였다. 분석 결과 그곳이 가장 좋지 못했다. 상대 세터의 역량을 낮추기 위해 목적타 서브가 필요했다”고 복기했다. 대한항공은 윙공격수 김학민과 정지석의 파이프공격 능력이 좋아 어떤 로테이션에서든 4개의 공격 옵션이 가능하다. 현대캐피탈은 집요한 목적타 서브로 4개의 공격 옵션을 쉽게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의 플레이는 평소보다 매끄럽지 못했고, 거기에서 승패가 갈렸다.

최 감독은 “전력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세터에 대한 분석이다. 패턴이 어떻게 되고, 어떻게 주로 공략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갈수록 전력분석이 승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3세트부터 준비된 작전에 창의력을 더했다. 문성민이 중앙에서 속공을 시도하고, 세터 노재욱도 중요한 순간마다 2단 공격으로 점수를 뽑았다. 평소 선수들끼리 따로 훈련하면서 놀이하듯 준비한 플레이는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역시 선행학습보다 더 효과가 큰 것은 스스로 재미를 느껴서 하는 자기주도학습이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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