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하며 키워준 할머니, 14년전 세상 떠난 날 기려
1월마다 유품 반지 끼고 생활… “하늘서 도울 것” 생각에 힘 솟아
할머니의 손은 누구에게든 따뜻함과 포근함을 준다. 프로농구 삼성의 주희정(39·사진)에게 할머니의 손은 아주 특별하다. 그는 갓난아기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구멍가게로 생계를 이어간 할머니는 어린 주희정을 농구 선수로 키워 줬다. 주희정은 고려대 2학년을 마치고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지병이 악화됐던 할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희정은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약지를 걸었던 할머니의 손을 2002년 1월 26일 내려놓아야만 했다. 할머니 고 김한옥 여사는 14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났다. 경기를 치르느라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던 주희정은 그 뒤로 매년 1월에는 할머니가 평생 손에 끼고 다녔던 옥반지(사진)를 왼손 약지에 끼고 다닌다. 할머니를 추억하고 싶어서다.
그래서인지 주희정은 1월에 늘 힘을 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까지 이번 시즌 그의 경기당 평균 출전 시간은 15∼20분 정도였다. 하지만 1월에 열린 9경기에서는 출전 시간이 평균 30분대로 늘어났다. 3일 모비스와의 경기에서는 연장전까지 41분을 넘게 뛰었다. 주희정은 16일 전자랜드전에서는 개인 통산 1117개의 3점 슛을 성공시키며 우지원(전 모비스)을 제치고 3점 슛 성공에서 역대 2위에 올랐다. 주희정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닌데도 힘이 덜 든다. 공수에서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문태영을 잘 활용하다 보니 저절로 체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출전 시간이 늘어나긴 했어도 힘들이지 않고 오히려 후배들과 경기 중에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건 할머니가 하늘에서 도와준 덕분”이라고 했다.
1997년 나래(동부의 전신)에 입단한 그에게 올해는 프로 20년 차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올해 할머니 기일을 앞두고는 유난히 손을 자주 보게 된다고 했다. 주희정은 “올 시즌 큰 경기를 앞두고는 경기장에 올 때 옥반지를 유난히 자주 만지작거리게 된다. 자유투를 쏠 때는 나도 모르게 공을 잡은 손가락을 보며 할머니가 도와줄 것이라고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주희정은 고려대 재입학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학업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했다. 약값 때문에 대학을 그만둔 손자를 가여워했을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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