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일본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한일전 사상 이런 역전패는 없었다. 2골 차로 앞서다 뒤집혔기에 충격파가 컸다. 8회 연속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고도 선수들은 죄인처럼 귀국했다.
“상대가 일본이 아니었다면 2골을 넣은 뒤 수비에 치중했을 것이다. 4골, 5골 차로 일본을 박살내고 싶었다.” 신태용 올림픽팀 감독의 후회 섞인 소감이다. 이것이 한일전이다. 피를 끓게 하고 상식의 눈을 멀게 만든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한일전을 전 세계 축구 국가대항전 중 5위로 꼽는다.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어 외국인도 빠져들게 하는 세계적인 콘텐츠다.
바로 그 복잡한 배경 때문에 한일전은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 유럽파가 총출동하는 정면승부는 더 보기 어렵다. 2011년 8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경기(0-3패)가 마지막이니 5년이 넘었다.
1972년 시작된 정기전의 전통이 끊긴 건 아니다. 전한진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은 “두 나라를 오가며 평가전을 치르는 협약서가 2010년 갱신됐다. 다만 주기는 정해진 게 없다. 확실한 건 다음 평가전은 한국에서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일전이란 대사를 치르려면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한다. 마치 남북대화 같다. 한일의 정치 관계가 안정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적에 대한 뒷감당도 가능한 때여야 한다. 2011년 삿포로에서 당한 0-3 패배는 ‘삿포로 참사’로 남아 있다. 이듬해 런던 올림픽에서는 홍명보호가 일본을 꺾고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한동안 두 나라가 한일전을 생각할 엄두도 못 냈다”고 회상했다. 한일은 이제 겨우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그래도 빅매치의 결실은 달콤하다. 흥행보증수표인 한일전을 안방경기로 치른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음 한일전을 주최하는 한국 쪽이 더 적극적인 이유다. 정기전이라 일본팀에 초청료를 줄 필요가 없다. 박용철 축구협회 마케팅 팀장은 “한일전을 하게 된다면 빅매치를 원하는 후원사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후원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통상적인 평가전보다 수입이 20억 원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게 축구협회의 예상이다.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다. FIFA의 A매치 일정상 11월에 맞대결을 추진해볼 수 있지만 월드컵 최종예선 일정이 빡빡하고 일본의 일정이 한국과 엇갈릴 수도 있다. 게다가 유럽 출신인 두 나라 대표팀 감독은 평가전 상대로 유럽의 강팀을 우선한다. 한일 평가전은 현실적으로 월드컵 최종예선이 끝나는 내년 9월 이후에나 가능하다.
하지만 이 복잡한 준비 단계를 하늘이 일거에 정리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4월 최종예선 조 추첨에서 두 나라가 같은 조에 편성될 가능성이 열렸다.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걸고서는 19년 만에 맞붙는 것이니 한일전에 목마른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최근 5번의 한일전(3무 2패)에서 A대표팀은 일본을 한 번도 못 이겼다. 한일전 사상 최다 경기 무승의 치욕이다. 한일전을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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