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도전 끝에 유치한 평창 겨울올림픽(2018년 2월 9∼25일)이 꼭 2년 앞으로 다가왔다. 11일 서울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60)를 만난 이유다. 그러나 먼저 개성공단 전면 철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가 북한과 접하고 있는 강원도의 특성 때문에 금강산관광 재개 등 대북제재 완화와 남북교류 활성화를 강하게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은 두 가지 원칙을 갖고 교류한다. 선경후정(先經後政)과 선이후난(先易後難)이다. 정치보다 경제를, 어려운 일보다 쉬운 일을 우선한다는 뜻이다. 중국 지린(吉林) 성에 자주 가는데, 요즘 중국에서는 개성공단 임금의 3배까지 주면서 북한 노동자를 쓰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는 좀더 시간을 갖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개성공단을 폐쇄하더라도 제재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며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이었다. 종북이 아니라 용북(用北)을 주장해온 그로서는 당연하다. 그는 6·25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던 철원 백마고지에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들고,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쪽 10km에 그은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5km 정도 북으로 올려 민통선에서 해제된 지역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강원도를 ‘평화특별자치도’로 만들길 원하고, 접경지역이라는 말 대신 ‘남북평화지역’으로 쓰자고 할 정도로 북한을 강원도의 중요한 성장엔진으로 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남북경색은 큰 타격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남북갈등은 이미 평창올림픽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김연아라는 흥행요소가 있었다. 평창올림픽에는 마땅한 게 없다. 남북단일팀 구성이 호재였지만 개최가 2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사실상 어렵다. 그나마 남북 동시입장, 남북 공동응원을 기대했는데 남북관계가 꼬이면 그마저도 힘들 것 같다. 평창올림픽이 남북한, 한중일, 동북아의 화합을 견인하는 이벤트가 되길 소망했는데 상황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평창올림픽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는 없다. 최 지사는 평창올림픽에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86 아시아경기와 88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2%였다. 두 행사의 사이에 있던 1987년 6월에는 민주화까지 이뤄냈다. 이젠 평창올림픽을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 크게는 정부가 할 일이지만, 토대를 만드는 곳은 바로 강원도다.”
토대는 어느 정도 진척됐을까. 평창올림픽은 평창, 강릉, 정선 3곳에서 분산 개최하고 12개의 경기장에서 치른다. 6개의 경기장은 새로 만들고, 3곳은 보완하며, 3곳은 수리해서 쓴다. 최 지사는 전체 공정은 60% 정도로 내년 말까지는 마무리될 것이라고 했다. 원주∼강릉 간 철도도 내년 말 완공되고(총길이 120.7km, 현재 공정 65%), 광주∼원주 간 제2영동고속도로는 올해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총길이 56.9km, 현재 공정 80%).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강원도와 수도권은 성큼 가까워진다.
6, 7일에는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2016 아우디 국제스키연맹(FIS) 스키 월드컵’이 열렸다. 올림픽 개막 전까지 시설과 운영을 점검하기 위해 열리는 28개 테스트 이벤트 중 첫 대회였다. 사실상 올림픽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실사단으로부터 매우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아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최 지사는 평창올림픽에 다른 옷도 입혀보고 싶어 한다. 문화, 환경, 평화, 경제올림픽이다. 문화올림픽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돼 2012년 런던, 2014년 소치 올림픽으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올림픽을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고 영속할 유산(legacy)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과 맥을 같이한다. 평창올림픽의 유산은 무엇인가.
“강원도를 겨울 스포츠의 메카, 겨울 관광의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비행기로 한국과 2시간 거리인 동남아 등에는 평생 눈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10억 명 정도나 된다. 올림픽 인프라와 경험을 살려 이들을 불러들이고, 이들에게 한국의 자연과 문화, 전통 등을 소개할 수 있다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그러나 대형 행사에는 늘 의문과 걱정이 따른다.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아닌지, 행사가 끝난 후 시설은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강원도는 올해와 내년에 1500억 원 정도의 빚을 질 것으로 예상한다. 강원도의 1년 예산이 5조 원이니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올림픽이 끝난 후 2, 3년 내로 갚을 수 있을 것이다. 행사 후 시설 활용방안은 고민 중이다. 알파인과 봅슬레이 경기장 등은 국내에서는 처음 만든 것이어서 수지와 관계없이 꼭 필요한 시설이다. 문제는 규모가 큰 개·폐회식장과 강릉의 스피드스케이트장인데 기업에 내줘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그가 기업을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겨울 스포츠 시설은 이용 기간이 짧고, 인구도 줄어드는 마당에 공무원에게 맡겨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 지사는 뜻있는 기업이 경쟁력과 창의성, 노하우를 살려 행사 후 시설을 스포츠, 고원관광, 휴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계절 복합 콘텐츠 시설로 운영해주길 기대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기업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최 지사의 ‘희망’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그나저나 정부는 평창올림픽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으며 강원도와의 협조는 잘되고 있는 것일까.
“예산은 정부 75%, 강원도가 25%를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지금부터는 시설이라는 하드웨어보다 홍보와 관광, 공연, 문화 이벤트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렇지만 정부가 확 달려든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우선 강원도부터라도 부지런히 나설 참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그래서 “혹시 야당 소속 도지사라서 그런 것은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 그는 중앙정부보다 도 자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의 18개 시군 단체장 중 더민주당 소속은 원주시장 한 명뿐이고, 국회의원 9석은 몽땅 새누리당 소속이다. 도의원 44명도 새누리가 36명, 더민주당 6명, 무소속 2명. 그래서 물어봤다. 야권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는데 지사 입장에서는 4월 총선이 끝나면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게 아니냐고. 의외로 똑 부러지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럴 것이다. 더민주당 내에 원래 개혁세력이 없던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의지가 없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과 같은 상태로 정권을 요구하고,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철학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정치는 산수다. 복잡할 게 없다. 내가 처음 지사에 당선될 때는 51% 지지를 얻었고, 두 번째는 50%를 얻었다. 야당은 갈라지면 진다. 통합은 선이고, 분열은 악이다.”
최 지사는 강원대 재학 시절에는 운동권이었고, MBC 기자로 일할 때는 MBC 노조위원장과 전국언론노조연맹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MBC 사장을 지낸 뒤 18대 국회 때 통합민주당 소속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파다. 그런데도 그의 친정 비판은 매섭다.
“우리나라에 진보가 들어올 때 저항과 함께 들어왔다. 그래서 징벌적 개혁을 말하고, 선악을 가른다. 그러나 진보의 진정한 가치는 포용, 용인, 수용, 타협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경직된 진보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자리를 거치면서 진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소신이다. 그는 일부 환경론자의 반대에 대해 “이미 10년간 논란을 벌였고, 7가지 조건을 붙여 설치하기로 결정한 만큼 6월에 예정대로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는 “케이블카는 강원도와 한국의 중요한 관광 콘텐츠”라고 공언하고 “반대하는 분들과의 협의는 설치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환경파괴를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 뭔가 다르다고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불리한 질문에도 예상외로 솔직하게 대답한다는 것이다. 도내에서도 올림픽 개최지가 아닌 곳은 관심이 적지 않느냐고 하면 곧바로 “그렇다”고 하고, 케이블카 설치 과정에서 환경파괴 여부를 물으면 “일부 환경파괴는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유를 물으니 “아무래도 팩트와 현장을 중시하고, 파당을 만들지 않는 기자생활을 오래한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임기는 평창올림픽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8년 6월에 끝난다. 다시 지사직에 도전할 것인지를 묻자 “그만둬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무게가 실린 대답은 아니어서 더이상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본인도 모를 테니까.
그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인을 만날 약속이 있다”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만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강원FC 축구팀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란다. 그는 이미 기자도, 정치인도 아니었다. 경영인이었다.
▼“불량감자도 쓸모 따로 있어”… 권한 아래로 보내 역할 맡겨▼
최문순 지사의 ‘감자 리더십’
최문순 지사는 별명이 꽤 많다. 동네 아저씨, 작은아버지, 문순C 등. ‘5미터’라는 것도 있다. 5미터 앞에서부터 아는 척하고 반가워한다는 뜻이다. 이들 별명의 공통점은 친화력과 격식 파괴다. 그는 2014년 6월의 도지사 재도전을 앞두고 ‘감자의 꿈’이라는 책자를 냈다. 강원도의 대표 작물인 감자에 빗대 자신의 소신과 정견, 공약 등을 정리했다. 책은 ‘감자의 쿠데타’라고 해서 첫 번째 지사 재직 시절에 행한 파격들도 소개하고 있다. 지사는 도민에게 봉사하는 자리라며 도청조직표에서 자신의 이름을 맨 밑으로 내린 것, 아무리 어린 직원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는 것, 감자 중 제일 작고 못생긴 것을 ‘불량’이나 ‘파치’라 하지 않고 ‘조림용’이라고 하듯 직원들을 용도에 맞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등이다. 그는 요즘도 지사의 권한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권한의 하방(下方)’을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게 논란을 부르고 있다. 조직 장악력이 떨어진다, 지사만 바쁘고 아래는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던져 지사를 보좌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지적들에 대해 그는 “일부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조직은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방침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감자의 꿈’에서 큰 감자는 그냥 큰 감자일 뿐이고 작은 감자는 그냥 작은 감자일 뿐이니, 큰 감자가 작은 감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내 사전에 권력은 없다’고도 했다. 너무 이상적인 것 같은데, 그는 “늦는 것 같지만 그게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최 지사는 지난해 10월 술을 마시고 도의회에 출석한 일로 곤욕을 치렀다. 도의회의 비판공세에 보좌책임을 물어 비서실장을 교체해야 했다. 사달이 있은 직후 그는 여러 공식 석상에서 “제가 요즘 자중해야 할 때”라고 ‘셀프 디스’를 해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고 한다. 동네 아저씨다운 처신이다.
‘감자의 꿈’에는 술에 관한 언급도 있다. 존경받는 어느 언론인이 한 말이라며 ‘술은 미디어다’라는 말을 소개했다. 그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촉매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술은 제가 경험해본 중에 가장 훌륭한 미디어”라고 상찬했다. 압권은 음주 소동을 예견한 듯한 마지막 문장. “다만 후유증이 너무 큰 것이 흠입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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