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을 이끈 최진철 감독(45). 그는 당시 “월드컵이 끝나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프로축구 포항의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약속은 지키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의 아들은 기뻐했다고 한다. 17일 포항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최 감독은 “프로팀 감독이 어떤지 잘 모르는 아들이 ‘대표팀 감독이 아니어서 비난받을 일은 없겠다’며 좋아했다. 대표팀은 어쩌다 한번 혼나지만 이제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매주 비난 받을 텐데….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잘해야겠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 생활을 한 그에게 프로 감독은 새로운 도전이다. 짧은 기간 동안 대회를 준비하는 것과 1년 단위로 프로팀을 관리하는 것은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성적에 대한 조급함도 있지만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새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했다.
‘긍정의 힘’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일까. 최 감독은 “포항에 오니 공기도 좋고, 밥맛도 좋다”며 “선수 시절부터 76.5㎏으로 몸무게를 유지했는데 최근에는 79.2㎏까지 늘었다”며 웃었다.
포항은 9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플레이오프에서 하노이(베트남)를 꺾고 본선에 합류했다. 공식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최 감독은 “하노이전은 연습경기로 생각했다”며 “진짜 데뷔전은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와의 본선 첫 경기”라고 말했다. 24일 포항은 지난해 ACL 우승팀인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방문 경기를 치른다. 비시즌 동안 고무열(전북) 등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 전력이 약해졌지만 최 감독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출전 기회가 없었던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해 경기력을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포항이 아닌 다른 팀에서 감독 제의가 왔다면 흔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포항을 택한 이유는 깊은 인상을 남겨 준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포항의 패스 축구를 보고 ‘한국에도 이런 팀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밀한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포항의 축구는 FC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짧은 패스 중심의 축구)’와 닮아 지역의 특산물에 빗대 ‘과메기타카’로 불린다. 최 감독은 “기존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패스 속도가 더 빠른 공격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2016시즌에 모든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노리는 최 감독은 특히 전북, FC서울, 울산과의 맞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전북은 최 감독이 1996~2007년 활약한 친정팀이다. 최 감독은 “전북전에서 깨끗하고 멋진 경기로 승리한 뒤 친정 팬들에게 박수를 받고 싶다. 동년배인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또 ‘동해안 더비’인 울산은 팬들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할 상대로 꼽았다. 최 감독은 “포항 서포터스 임원들이 ‘다른 팀한테는 져도 좋지만 울산은 꼭 이겨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최근 최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에 주력하고 있다. 감독과 선수가 서로에게 빨리 적응해야 팀 전체의 경기력이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상 쓰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는데 아직 선수들이 받아주질 않는다”고 말했다.
훈련 때 모자를 쓰지 않는 것도 선수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최 감독은 “17세 이하 선수들을 이끌 당시에 내가 모자를 쓰면 조교처럼 보여 무섭다는 말을 들었다. 햇볕이 강해도 모자는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