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가 필드를 떠나 있는 지도 6개월째다. 그 사이 골프황제의 자리는 무주공산이다. 로리 매킬로이가 95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마르틴 카이머, 루크 도널드도 잠시 황제의 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도 주인이 3번이나 바뀌었다. 매킬로이에 이어 조던 스피스, 제이슨 데이 그리고 현재는 다시 스피스가 21주째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당분간 스피스가 황제의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스피스는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무려 30언더파를 기록해 PGA투어 최소타 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했다. 감히 넘볼 상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스피스는 1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컨트리클럽(파71)에서 열린 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에서 무너졌다. 1라운드에서 무려 8오버파 79타를 쳤다. 참가선수 144명 중 공동 142위였다. 다음날 스피스는 버디 8개를 뽑아내며 반전을 노렸지만 보기 5개를 적어내면서 3타를 줄였다. 결국 5오버파 137타로 컷 탈락했다. 79타는 스피스가 프로 데뷔 이후 기록한 세 번째 저조한 성적이다. 가장 최근은 2014년 플레이오프 투어챔피언십 2라운드 때 기록한 80타다.
스피스가 8오버파를 치자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스피스는 침착했다. 다음 날 2라운드에 나선 스피스는 전날 8오버파를 친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20일 오전 7시32분 스피스가 프레드 커플스, 저스틴 토마스와 함께 10번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다. 컷 통과를 위해선 최소 8타를 줄여야 하기에 쉽지 않았다. 오히려 10번홀 버디에 이어 11번과 12번홀에서 보기를 적어내며 뒤로 더 물러났다. 컷 통과를 기대하기엔 벅차보였다. 그러나 스피스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뿐만 아니라 한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은 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8번홀까지 경기를 끝냈을 때 스피스의 컷 탈락은 확정적이었다. 2타를 줄여 6오버파가 됐지만 예상 컷 통과는 이븐파였다. 이쯤되면 대충 경기를 끝내려는 생각도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경기에 집중했다. 9번홀(파4). 두 번째 샷을 홀에 가깝게 붙였다. 순간 갤러리들의 엄청난 환호가 터졌고, 스피스가 그린에 올라서자 팬들은 더욱 큰 목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스피스에 대한 팬들의 예우였다.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스피스는 멋진 버디를 선사하며 작은 기쁨을 줬다. 실력으로 1인자가 될 수는 있지만 황제는 실력만으로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팬과 호흡하며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스피스의 모습에서 683주 동안 우즈가 내뿜었던 ‘골프황제’의 향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