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아직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롯데는 1992년, LG는 1994년, 한화는 1999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품은 것이 마지막이다.
이들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용택은 프로에 첫발을 내디딘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까지 가 봤다. 플레이오프에서 홈런 2개를 포함해 타율 0.350으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던 박용택은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23타수 3안타로 부진했다. 결국 LG는 2승 4패로 삼성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줬고, 박용택에게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가 돼 버렸다. 그는 “학창시절(휘문고-고려대)부터 내내 우승 팀에서만 뛰어서 우승이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팀이 하위권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몰랐다”며 ‘2002년 한국시리즈’를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꼽았다.
타격왕, 도루왕, 골든글러브를 받은 그는 지난해 프로야구 최초로 4년 연속 150안타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그는 “이 나이에 이런 말 하면 욕먹는다”라면서도 “LG 우승과 타격 전관왕은 야구를 하며 늘 꿔 왔던 꿈”이라고 했다. 그는 올 시즌 뛰는 야구를 예고한 LG에서 ‘팀 내 도루 1등’을 다짐하며 다시 한번 정상 도전에 나선다.
우승에 맺힌 ‘한(恨)’으로 치면 김태균도 박용택에게 뒤지지 않는다. 2001년 신인왕에 오른 김태균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건 2006년 딱 한 번뿐이다.
하지만 김태균은 2006년 한국시리즈보다 2005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의 아쉬움이 더 크다고 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SK를 꺾고 팀이 좋은 흐름에 있었는데 내 타격이 부진했다. 내가 제 역할만 했어도 한화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많이 든다.” 김태균은 당시 11타수 1안타 1병살을 기록했다.
2010년 자유계약(FA) 선수로 일본 지바 롯데로 이적한 김태균은 한화에서 9시즌 동안 이루지 못했던 우승의 꿈을 이뤘다. 2012년 한화로 복귀한 그는 “일본에서 한번 해 보니 한화에서 더 우승하고 싶다”고 했지만 한화는 그가 합류한 뒤 꼴찌만 내리 세 번 했다. 김태균은 “변함없이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우승까지 할 수 있도록 선수단 모두 노력하겠다”며 “한화 유니폼을 입고 우승하는 게 은퇴 전 목표”라고 말했다.
올 시즌 롯데의 새로운 주장이 된 강민호도 간절하게 우승을 바랐다. 그에게도 쓰라린 플레이오프 기억이 있다. “2012년 SK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가 실수를 정말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시리즈 내내 방망이가 부진(14타수 1안타 1타점 1병살)했던 그는 마지막 5차전에서 송구 실책까지 저질러 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난해 포수 최초로 3할 타율-35홈런을 달성한 그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우승에도 힘을 보탰지만 정작 소속팀 롯데는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에게 ‘포수 최초 3할 타율-35홈런’과 롯데 우승을 맞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두말할 것 없이 롯데 우승이 우선이다. 롯데에서 우승을 못 해 본 것이 정말 아쉽다. 국제대회에서 경험했기에 우승이 주는 그 느낌을 안다. 롯데 우승은 더 특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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